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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업이 살려고 나라를 팔아먹나?"..돌이켜 본 CJ의 드론 참사

바람아님 2015. 6. 30. 10:50

SBS 2015-6-29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포는 명실공히 국제적으로 최고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는 박람회입니다. 세계 박람회 기구가 공인하는 엑스포로 매 5년마다 열리는 등록 박람회(REGISTERED EXPO)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여수 엑스포는 등록박람회가 아닌 인정박람회(RECOGNIZED EXPO)로 공인박람회와는 구분됩니다.)

오는 10월 말까지 열리는 박람회 기간 동안 예상되는 관람객 수만 2천만 명으로 엄청난 홍보효과 때문에 세계 각국이 앞다퉈 국가 이미지를 높일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관람시설을 만들고 역량을 집중해 홍보전을 벌입니다.

지난 주는 특히 엑스포 기간 중 딱 한 번 있는 '한국 주간'이었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타격을 입은 대외 이미지를 만회하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이번 엑스포의 주제인 식량 문제와 관련해 미래의 먹거리로 가능성을 제시한 '한식'의 우수성을 알릴 더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탈리아 언론 등을 뒤덮은 것은 한국 주간 행사가 아니라 밀라노의 유서깊은 문화재인 두오모와 충돌한 드론과 관련된 기사였습니다. 드론을 띄워 사고를 친 게 한국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주간 행사를 준비해 온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 "기업이 살려고 나라를 팔아먹나?"…장관의 호통

한국의 날 행사가 열린 지난 23일, 하루 전 드론을 띄워 두오모의 마리아상을 훼손할 뻔 했던 아찔한 사고를 일으킨 한국인이 CJ E&M과 용역업체 직원들이라는 사실이 단편적으로 알려졌을 때만 해도 단순한 실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날의 공식행사 취재가 마무리되고 엑스포 한국관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기자들에게 낯익은 CJ그룹의 고위임원이 다가와 불쑥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청하더군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룹 실세인 이 분은 '드론 사고와 관련해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앞으로 잘할 테니 잘 좀 도와달라'는 취지로 언론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몇몇 기자들은 "드론을 띄우는 게 불법인 줄 정말 몰랐느냐, 그걸 모르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문했지만, 이 임원은 "불법인 줄 몰랐으며, 용억업체 직원이 욕심을 부리다가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진상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날 행사와 한국 주간 행사가 '드론 참사'로 빛이 바래면서 현장을 방문 중이던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확인해 보니 CJ 그룹의 고위임원이 느닷없이 기자들을 찾아와 해명을 한 것도 김 장관이 CJ 관계자들을 불러 호통을 친 뒤였습니다.

김종덕 장관은 CJ측 임원들에게 "대기업인 당신들이 살겠다고 나라를 팔아먹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책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장관은 CJ측에 "관련 사실들을 언론에 정확히 알리고 깔끔하게 뒷수습을 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고 합니다. 김 장관이 이렇게 대노한 것은 불법 촬영 혐의로 연행된 CJ 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엑스포 행사장에 설치된 한국관에서 설명회를 하려고 했다"는 거짓 진술을 이탈리아 경찰에 둘러댔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두오모를 촬영하던 CJ측 관련자들은 엑스포 한국관 운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엑스포 한국관에 한식 메뉴를 독점공급하고 있는 '비비고'라는 CJ 계열사 브랜드를 홍보할 광고물 촬영을 위해 드론을 띄웠다고 CJ측 임원도 기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만 추정컨데 연행됐던 직원들은 아마도 엑스포 한국관을 연관 지으면 쉽게 현지 경찰 조사를 무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곤경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이 결과적으로 한국을 대표해 엑스포에 참가한 대표단의 일원이 몰지각한 드론 촬영으로 세계적 문화유산을 훼손할 뻔 한 사건으로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된 상황으로 확대되고 만 것입니다.

● 계속된 CJ의 거짓말…"불법인 줄 몰랐다"

하지만 CJ 측은 끝까지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룹 최고위 임원은 엑스포 행사장에서 불법사실을 정말 몰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용역업체의 욕심이 화를 불렀다며 불법 임을 몰랐다고 변명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이미 SBS의 특종보도로 알려진 것처럼 CJ측이 6월 초에 밀라노 상공에서 드론 촬영이 가능한 지 여부를 엑스포 한국 대표단에 문의했고, 한국 대표단은 밀라노 엑스포 조직위원회에 문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드론 촬영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CJ측에 회신했기 때문입니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도 이미 사실을 보고받고 CJ측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자들 사이에 오간 이-메일까지 제시하면서 CJ측의 무책임한 행동을 질타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단독] CJ, 두오모 드론 촬영 '불법' 알고도 강행



설혹 그룹 임원들이 드론 촬영의 불법성을 사전에 몰랐다 하더라도 주무부처 장관이 물증까지 제시하면서 질책을 한 뒤에도 기자들에게 사실을 감추고 거짓말로 얼버무리려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엑스포 한국 주간 행사에는 정말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녹아 있었습니다. 30도를 육박하는 더위에 긴 한복자락을 휘감으며 장고춤을 선보이던 무용단부터, 박봉을 감수하면서 묵묵히 한국관 안내를 맞고 있는 대학생 가이드들까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열정을 다하고 있는 분들에게 CJ의 이번 드론 참사는 그야말로 제대로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 기-승-전-비비고(?)…과도한 엑스포 상업주의

이 대목에서 밀라노 엑스포의 준비과정부터 특정기업에 대한 과도한 밀어주기가 이번 드론 참사를 불러 온 배경은 아닌 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문체부는 밀라노 엑스포 시작 전 공개입찰을 통해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에 한식을 공급할 업체를 선정하는 작업을 벌였고, 한 차례 유찰 끝에 CJ 푸드빌을 공식 업체로 선정했습니다.

외국인들의 입맛을 겨냥한 한국관의 한식메뉴는 CJ 푸드빌의 외식브랜드인 '비비고'의 이름 아래 독점 공급되고 있습니다. 전시관을 죽 둘러본 뒤에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마지막엔 '비비고' 브랜드 로고를 곳곳에 내건 한식당으로 이어집니다. 동선만 놓고 본다면 시쳇말로 기-승-전-비비고 라고 할 정도로 CJ의 한식브랜드 '비비고'는 엑스포를 통해 알리고자 했던 한식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이 몇이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가 받은 인상은 유명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나 관람시설을 이용하고 나오는 마지막 통로에 들어선 기념품 가게를 특정기업이 통째로 독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세계 140여개국이 참가한 이번 밀라노 엑스포에서 이런 식으로 특정기업의 브랜드가 국가 이미지를 대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전시관은 한국관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한식이 상징하는 국가 이미지가 특정기업의 브랜드로 대체돼 버리는 상황을 정부가 앞장서서 만든 꼴이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CJ 입장에서야 밀라노 엑스포에서 한식의 대표선수 같은 이미지를 최대한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었을 테고 이 과정에서 기업 브랜드의 상업성에 적당히 물을 탈 수 있는 밀라노 엑스포의 공식적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밀라노의 상징인 두오모 그림이 절실히 필요했을 거라 보여집니다.

이런 상업적 절실함이 결국 불법이라는 통보 조차 무시한 채 과욕으로 이어지고 드론 참사가 터지자 거짓으로 상황을 넘겨보려다 일을 키운 셈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논리의 비약'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도 있지만 엑스포에 내놓을 한국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정된 과도한 상업주의가 초래한 드론 참사는 밀라노 엑스포의 변할 수 없는 가장 큰 목표인 국가이미지 홍보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초래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엑스포 같은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국제 행사에 기업의 도움과 참여가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특정기업의 이해와 직결될 수 밖에 없는 유무형의 '독점적 이윤'을 보장하는 형태로 준비되고 치러진다면 제2, 제3의 드론 참사는 언제고 다시 발생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윤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