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7-16
빅2로 뜬 中, 주춤하는 日… 세력 판도 요동치는 동아시아
주변 강대국들의 ‘한국 러브콜’… 축복이지만 재앙이 될 수도
독자적 역량과 의지 키우고 韓中 선린우호-韓美동맹 강화
불확실한 안보환경 대비해야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전략지형과 지정학적 역학관계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지각 변동이 일본의 부상과 중국의 쇠퇴에 기인한 것이라면 21세기에는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정체(停滯)가 역내 세력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현상을 타파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신흥세력 간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충돌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 영토분쟁, 일본의 ‘보통국가화’ 등 역내 핵심 안보 현안의 중심에는 그런 알력과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지정학적 요충에 위치한 한국이 맞고 있는 도전도 심상치 않다.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받고 있는 러브콜은 동아시아 지정학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과 체급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에서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그르치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 생존전략 수립의 출발점은 우리 안보와 생존에 대한 위협이 어디서 올 것인지를 직시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동북아 세력 균형을 파괴하고 패권을 장악하는 세력이 항상 우리를 침탈하고 종속관계를 강요한 주범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반도를 지배하고, 한반도가 적대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패권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 등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전쟁은 역내 패권 투쟁의 산물이었고 우리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을 때 당한 일들이다.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고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문명세상은 요원하다. 불확실하고 험난한 안보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략으로 나라를 지켜나갈 것인가.
첫째, 주변국이 함부로 우리를 힘으로 겁박하거나 얕보지 못할 독자적 역량과 유사시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와 흡사한 지정학적 제약을 안고 있는 베트남이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보다 국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강대국 위세에 주눅 들지 않고 결사항전으로 외침을 막아내겠다는 불굴의 정신 때문이다.
중국은 1979년 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응징하려고 쳐들어갔다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서둘러 퇴각하는 수모를 겪었다. 작년 5월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해온 파라셀제도에서 중국이 원유 시추를 강행하다가 양국 간 충돌이 일어나자 베트남 내 140여 개 중국 기업이 반중 시위대의 피습을 받고 중국인 9000여 명이 혼비백산해 국외로 탈출하는 소동도 있었다. 베트남을 얕잡아 보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중국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였다. 우리도 중국의 위세에 눌려 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굴종의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모화사상과 사대주의의 DNA를 버리고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안보전략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안보 차원에서는 한중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우리의 ‘엘도라도’이므로 두 가지 핵심 국익이 충돌하는 것을 막는 것이 대중 외교의 핵심 과제다. 경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안보에서 대중(對中) 적대정책의 문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생존과 명운이 걸린 사안이 아니면 중국과의 대결과 충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셋째,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회복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유리한 안보 지형을 만드는 것을 외교안보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역내 세력균형이 한국에 가장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고 독자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패권 세력이 힘으로 주변국을 압박하고 싶은 유혹도 덜 받게 된다.
이를 위해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과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안보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도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목표로 발전시켜 나가고 국민 정서가 국익을 훼손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모든 방책이 실패하고 불의의 상황이 닥칠 가능성에 대비하여 확실한 보험을 들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최선의 보험이다. 20세기 초까지는 새로운 패권 세력이 출현할 때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은 무모하게 대들었다 치욕을 당하거나 새 질서에 순응하여 군신관계를 맺고 생존을 의탁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밖에 없었다. 미국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우리에게는 동맹이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기고 지정학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패권 세력의 발호를 견제할 최후 균형자는 미국뿐이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주변 강대국들의 ‘한국 러브콜’… 축복이지만 재앙이 될 수도
독자적 역량과 의지 키우고 韓中 선린우호-韓美동맹 강화
불확실한 안보환경 대비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이 과정에서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현상을 타파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신흥세력 간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충돌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센카쿠 열도와 남중국해 영토분쟁, 일본의 ‘보통국가화’ 등 역내 핵심 안보 현안의 중심에는 그런 알력과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지정학적 요충에 위치한 한국이 맞고 있는 도전도 심상치 않다.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받고 있는 러브콜은 동아시아 지정학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과 체급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에서 축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을 그르치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 생존전략 수립의 출발점은 우리 안보와 생존에 대한 위협이 어디서 올 것인지를 직시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동북아 세력 균형을 파괴하고 패권을 장악하는 세력이 항상 우리를 침탈하고 종속관계를 강요한 주범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반도를 지배하고, 한반도가 적대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패권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 등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전쟁은 역내 패권 투쟁의 산물이었고 우리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을 때 당한 일들이다.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고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문명세상은 요원하다. 불확실하고 험난한 안보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략으로 나라를 지켜나갈 것인가.
첫째, 주변국이 함부로 우리를 힘으로 겁박하거나 얕보지 못할 독자적 역량과 유사시 이를 사용할 의지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와 흡사한 지정학적 제약을 안고 있는 베트남이 중국에 휘둘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보다 국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강대국 위세에 주눅 들지 않고 결사항전으로 외침을 막아내겠다는 불굴의 정신 때문이다.
중국은 1979년 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응징하려고 쳐들어갔다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서둘러 퇴각하는 수모를 겪었다. 작년 5월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해온 파라셀제도에서 중국이 원유 시추를 강행하다가 양국 간 충돌이 일어나자 베트남 내 140여 개 중국 기업이 반중 시위대의 피습을 받고 중국인 9000여 명이 혼비백산해 국외로 탈출하는 소동도 있었다. 베트남을 얕잡아 보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중국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였다. 우리도 중국의 위세에 눌려 대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굴종의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모화사상과 사대주의의 DNA를 버리고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안보전략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안보 차원에서는 한중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우리의 ‘엘도라도’이므로 두 가지 핵심 국익이 충돌하는 것을 막는 것이 대중 외교의 핵심 과제다. 경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안보에서 대중(對中) 적대정책의 문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생존과 명운이 걸린 사안이 아니면 중국과의 대결과 충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셋째,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회복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유리한 안보 지형을 만드는 것을 외교안보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역내 세력균형이 한국에 가장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고 독자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패권 세력이 힘으로 주변국을 압박하고 싶은 유혹도 덜 받게 된다.
이를 위해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과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안보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도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목표로 발전시켜 나가고 국민 정서가 국익을 훼손하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모든 방책이 실패하고 불의의 상황이 닥칠 가능성에 대비하여 확실한 보험을 들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최선의 보험이다. 20세기 초까지는 새로운 패권 세력이 출현할 때 우리에게 허용된 선택은 무모하게 대들었다 치욕을 당하거나 새 질서에 순응하여 군신관계를 맺고 생존을 의탁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밖에 없었다. 미국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우리에게는 동맹이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기고 지정학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패권 세력의 발호를 견제할 최후 균형자는 미국뿐이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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