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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이슈] 대만 첫 여자총통 나온다.. 親中 '집권' 국민당 훙슈주 VS '탈환' 민진당 차이잉원

바람아님 2015. 7. 18. 09:56
국민일보 2015-7-15

대만 집권 국민당 훙슈주(洪秀柱·67) 입법원(국회 격) 부원장은 지난 10일 과거 유방암 투병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고백해야만 했다. 일부 언론이 총통 예비후보자인 훙 부원장이 유방암 선고를 받아 내년 1월 16일 총통 선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자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다. 훙 부원장은 "2011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지만 이후 치료를 받아 지난 6월 10일 국립대만대학교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통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민당 총통 후보로 단독 입후보해 오는 19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 확정 절차만 남긴 훙 부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처럼 대중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그만큼 선거전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야당 민주진보당은 일찌감치 지난 4월 총통 후보로 차이잉원(蔡英文·58) 주석을 선출해놨다. 두 사람은 모두 미혼의 여성이다. 여성 2명이 대선에서 맞붙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누가 뽑히든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 탄생하게 된다. 두 후보 뒤에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과 견제를 펼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버티고 있어 6개월여 남은 총통 선거전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여성 대권 후보 간의 격돌

훙 부원장의 별명은 ‘작지만 매운 고추’라는 뜻의 ‘샤오라자오(小辣椒)’다. 그가 국민당의 단독 후보로 결정되는 과정은 매운 고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당 내외를 막론하고 훙 부원장이 총통 후보자로 부상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국민당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내년 총통 선거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다. 패배가 뻔한 싸움에 유력 후보들은 하나둘 발을 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선거에 책임을 지고 국민당 주석직에서 물러난 마잉주 현 총통을 대신하게 된 주리룬 주석은 “당 개혁과 단합을 위해 전념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력 총통 후보로 꼽혔던 왕진핑 입법원장과 우둔이 부총통도 뒤를 이었다. 민진당의 위세에 눌린 남자들 틈에서 훙 부원장은 홀로 깃발을 들었다. 그는 당 규정에 따라 지난 6월 중순 실시한 3개 여론조사에서 최소 지지율인 30%를 넘는 46.2%의 지지율로 당내 경선 자격을 얻었다. 단독 예비후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만장일치 추대냐 형식적인 투표를 거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


민진당 차이 주석은 벌써 두 번째 총통 선거 도전이다. 2008년 5월 민진당 최초로 여성 주석이 된 그는 2012년 총통 선거에 나섰지만 국민당 마잉주 총통에게 6% 포인트 차로 졌다. 주석직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5월 93%가 넘는 지지율을 얻으며 주석으로 복귀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답게 당이 어려울 때는 항상 전면에 나서서 승리를 이끌었다. 복귀 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에 참패를 안기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민진당은 6개 직할시에서 4곳을 쓸어담았다. 수도 타이베이도 민진당이 후보를 양보한 무소속 출신 야당 단일 후보가 국민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1986년 민진당 창당 이후 최고의 성적표였다.


두 후보의 경쟁 구도는 차이 주석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격차가 좁혀진 뒤 다시 격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대만연합보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진당 지지율은 58%, 국민당 지지율은 10%에 불과했다. 5월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차이 주석과 당시 유력 후보였던 주리룬 국민당 주석 간 양자 가상 대결에서 차이 주석이 주 주석을 8% 포인트 차로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국민당 후보로 훙 부원장이 기정사실화된 후 지난달 17일 대만 뉴스전문 채널인 TVBS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훙 부원장의 지지율이 41%로 차이 주석(38%)보다 3%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왔다.


▨ 너무도 다른 두 여성

두 사람은 모두 미혼이라는 점과 총통 후보라는 점 외에는 별 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우선 출신부터 다르다. 전매국 공무원이던 훙 부원장의 아버지는 1949년 계엄령 치하에서 3년3개월간 투옥된 뒤 평생 직업을 갖지 못했다. 대신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차이 주석은 대만 납세 랭킹 10위 안에 들었던 객가(客家)인 대부호 집안 출신이다. 재산으로 치면 훙 부원장의 100배 정도 된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훙 부원장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중국문화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 성적이 좋지 못해 3수를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노스웨스트 미주리 주립대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대만에 돌아와 약 10년간 중학교 교사를 했다. 고등학생 때 국민당에 입당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0년부터 국민당 위원회 신베이시 지구 조장으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들어섰다. 1990년 1대부터 현재까지 8선 입법위원으로 ‘8전 전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2012년부터 입법위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주류 엘리트 출신의 차이 주석은 민진당보다는 국민당에 어울리는 이력을 갖고 있다. 대만 최고의 명문 국립대만대 법학과를 졸업한 차이 주석은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를 받은 뒤 국립정치대 교수를 지냈다. 실제 차이 주석을 정계에 입문시킨 인물도 국민당 주석이었던 리덩후이 전 총통이다. 리 전 총통은 차이 주석을 92년 경제부 고문, 94년 대륙위원회 자문위원, 95년 공평거래위원회 위원, 99년 국가안전회의 자문위원 등에 임명했다. 2000년 대만 역사상 처음 정권교체가 이뤄져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이 집권하자 차이 주석은 민진당에 입당했다. 대륙위원회 주임을 시작으로 입법원 위원, 2006년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등 고위직을 거쳤다.


▨ 등 뒤에 어른거리는 중국과 미국의 그림자

차이 주석은 지난 5월 3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렸다. 첫 일성은 “우리 당은 3년 전 총통 선거 때보다 충분히 준비가 돼 있다”였다. 미국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부 청사에서 차이 주석을 접견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 대만 인사와는 정부 청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6월 마지막 주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차이 주석을 집중 조명하는 커버스토리 제목을 ‘그가 중화권에서 유일한 민주국가를 이끌게 될 수 있다’로 잡았다. 인터뷰 기사엔 아예 ‘차기 총통이 자신을 말하다’란 제목을 붙였다. 미국 정계와 언론이 공공연히 차기 대만 총통으로 차이 주석을 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훙 부원장은 “나는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에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차이 주석의 ‘친미(親美)’ 성향을 공격했다.


중국은 국민당의 승리를 내심 바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민진당을 견제하고 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집권이 그동안 쌓아온 우호적인 양안 관계의 틀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차이 주석 방미와 관련, “국제적으로 대만 독립과 관련한 어떤 형태의 분열 행동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양안 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92공식’(九二共識·92컨센서스)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 간 합의된 92공식은 중국에서 주장했던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대만이 받아들이지만 해석은 각자 달리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민당 돕기는 최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일부터 ‘대만동포증’만 있으면 비자 없이 중국 왕래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민당 정권이라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듯 보였다. 앞서 시진핑 주석은 지난 5월 주리룬 국민당 주석을 초청해 ‘국공(國共) 수뇌회담’을 열어 92공식과 대만독립 반대 등 양안 관계의 대원칙을 강조하며 이를 부정하는 세력에게 경고를 보냈다.


훙 부원장은 최근 당내 정견발표회에서 ‘양안 평화관계 발전과 국내 균형적인 경제발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면서 기존 국민당 정책을 계승할 계획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차이 주석은 중국과의 통일 반대를 내세우는 민진당 당론과 달리 양안정책에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차이 주석은 방미 중 “(민진당이 집권할 경우) 대만 헌법체제와 지난 20년여년 양안 협력과 교류를 유지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이 때문에 차이 주석은 중국요리에 널리 쓰이는 줄기 속이 빈 채소 ‘공심채(空心菜)’와 같다며 ‘쿵신차이(空心蔡)’로 불리기도 한다.


차이 주석의 이 같은 행보는 대만 독립이라는 원칙과 중국 없이는 살 수 없는 대만의 현실 사이 고민이 드러나 있다. 지난해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중국과의 무역에서 나왔다. 대만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도 중국인이다. 최근 훙 부원장과 차이 주석의 지지율이 박빙이 된 것도 양안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결국 내년 선거는 대만 유권자들이 친중(親中)과 반중(反中) 가운데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결판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