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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테헤란 취재기 ③ 금기의 영역 '음악'에 빠진 이란 젊은이

바람아님 2015. 7. 24. 09:39

SBS 2015-7-22

 

먼저 퀴즈 하나 들어갑니다. 불교나 기독교처럼 '이슬람 음악'이 있을까요?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슬람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랍 음악'이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밸리 댄스도 그렇고 '하비비(내 사랑이란 뜻의 아랍어)~~~'하며 길게 내뱉는 가사가 수없이 들어간 노래도 그렇고 아랍 민족 고유의 음악입니다.

● 이슬람과 음악

이슬람이란 종교 자체에서 음악은 원래 금기로 여겨집니다. 이슬람에서 음악을 배격한 이유는 선지자 무함마드 때문인데요. 음악은 신을 생각하고 신에 집중해야 하는 인간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고 규정했다고 합니다. 무함마드가 어느 날 아름다운 피리 소리를 듣고 그만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됐는데 그 이후 신에게 피리 연주자들이 피리를 갖지 못하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 고전에 '술은 인간의 광약과 같다'라는 문구처럼 이슬람에선 '음악은 인간의 광약과 같다"고 취급하는 거죠. 그래서 물론 춤도 금기시합니다. 그래서, 이슬람에서 운율을 가진 건 이슬람사원인 모스크에서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아잔'과 이슬람 성전인 '코란'의 낭독 정도입니다.

 

이슬람에서도 13세기 무렵 춤과 음악을 통해 알라에게 다가서는 '수피주의'가 유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노래나 춤으로 무아지경 상태에 빠져 초현실적인 신의 세계에 접근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감정을 격렬한 춤이나 노래로 표현하는 '행위종교' 성격을 가졌습니다. '고행과 극기, 버림과 비움을 통하여 유일신인 알라와 직접적인 합일을 추구'한다고 용어사전에 설명하던데 솔직히 수피의 참 의미는 저도 헤아리기 힘듭니다. 어쨌든 수피주의는 한때였고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슬람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지닌 아랍 전통 가무인 '밸리 댄스'의 운명도 마찬가집니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천대를 받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집트의 한 방송국이 '밸리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송했다가 이슬람권의 거센 반발로 첫 회만 방송하고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나름 이슬람권에서도 개방적이라는 이집트조차 밸리 댄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레스토랑이나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슬람권의 대부분 나라들은 음악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아랍 아이돌이라고 해서 노래 실력을 겨루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정도입니다. 이슬람에선 술을 마실 수 없는 만큼 인간의 욕구와 스트레스를 배출한 통로는 자연스럽게 음악과 춤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흡연율도 매우 높습니다. 젊은이들은 차에다 서라운드 시스템을 설치해서 인기팝송이나 비트 빠른 아랍 가요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다니곤 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똑같이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즐깁니다.

● 이란에서 '음악과 춤'은 금기

그런데, 중동의 '왕따'라고까지 표현했던 '이란'은 좀 다릅니다. 엄격한 종교국가답게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악과 춤을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페르시아의 전통음악인 '라디프'와 전통춤(남성들이 팔짱 끼고 추는 걸 봤는데 마치 군무 같았습니다.) 같은 경우는 예외지만 소위 '대중가요'라고 할 만한 노래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단 서양노래는 불러서도 틀어서도 안 됩니다. 대중가요는 당연히 공연도 금지됩니다. 특히 여성은 혼자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당연히 거리의 음식점과 카페, 공원 같은 곳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페르시아의 문화를 알린다는 목적에서 미술과 영화 부문은 정치적으로 적극 장려하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이런 사회적 통제에도 인간의 본능적 유희 중 하나인 음악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막지는 못합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통해 한다고 한들 한계가 있습니다. 이란의 젊은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금기의 영역인 서양 음악은 물론 우리나라의 K-POP까지도 접하고 있습니다. 이란 젊은이들이 얼마나 K-POP에 빠져 있느냐면 실제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이돌의 생일에는 자신들끼리 모여서 생일파티를 열고 아이돌의 얼굴이 새겨진 카페트를 직접 짜서 한국에 보내기도 합니다. (이란 정부가 유튜브를 막아놓은 탓에 이란 젊은이들이 K-POP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건 좀처럼 쉬울 일이 아닙니다.) 인기 있는 K-POP 그룹으로 소녀시대. 빅뱅, EXO, 슈퍼주니어 등이 꼽혔습니다.

● 'THE GREAT MOOD'

이런 이란의 젊은이들 가운데 저에겐 아주 특별한 느낌을 던져준 친구들을 이번 테헤란 방문 때 만났습니다. 다들 20대 초반의 남녀 5명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K-POP 팬에 그치지 않고 K-POP을 직접 부르고 곡까지 직접 만들고 있었습니다. 'THE GREAT MOOD'라는 그룹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자리에서 즉석에서 에픽하이의 '춥다'라는 곡을 반주 없이 불러줬습니다. 여성 보컬의 음색이 너무 곱고 발음도 정확해서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노컷'으로 촬영했으니 한번 감상해보세요.)



더 놀라운 건 작곡을 담당하는 멤버 빼고 모두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이란 테헤란 대학에는 교양과목으로 한국어 강좌가 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테헤란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꾸준히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모두 한국어로 진행할 정도로 뛰어난 언어능력을 가졌는데 놀랐습니다.

저마다 한글 예명도 있습니다. 마리암이라는 여성 보컬은 '강희망'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 친구는 한국어 실력은 정말 남달랐는데 회화뿐 아니라 저와 한글로 문자를 주고받을 정도로 글쓰기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로 보통 K-POP 팬들과는 달랐는데, "저는 7080 음악을 좋아해요"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이문세 선배님을 존경합니다."라고 말해 한 번 더 놀랐습니다.

 

▲ 이란의 K-POP 팬들, 금기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들입니다

'THE GREAT MOOD' 그룹 멤버들은 함께 모여 K-POP 음악을 부르고 곡을 만드는 일이 행복하지만 금기를 깨는 일인 만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털어놓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음악을 녹음하려고 해도 녹음실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일단 여자가 끼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고 합니다. 집에서 연습을 해도 노랫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갈까 봐 마음껏 소리를 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애써 노래를 만들어도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공연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힘든 데 왜 음악을 하려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절박할수록 더 하고 싶어진다"고 말합니다. 엄격한 통제사회인 이란에도 개방의 바람은 이미 불고 있고 그 변화는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와 세계와 소통하려는 의지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핵 협상 타결과 함께 이란에 채워진 고립의 빗장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란 최초의 K-POP 그룹인 'THE GREAT MOOD'는 벌써부터 자신들의 앨범 커버도 제작해놨습니다. 그러면서 "언제가 저희가 만든 K-POP 음악을 한국에 계신 분들 앞에서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면서 자신들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말합니다.

페이스북에 'THE GREAT MOOD' 치시면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리믹스한 K-POP곡도 있으니 한 번 감상해보시고요. 한국 친구들을 꼭 사귀고 싶다고 하니 '좋아요' 버튼 눌러주시는 것 잊지마시고요.

▶ 'THE GREAT MOOD'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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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진 기자soccer@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