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박성원의 정치해부학]한반도에 中 ·日군대 들어오는 날

바람아님 2015. 10. 24. 10:11

동아일보 2015-10-23

박성원 논설위원

 

 

북한의 해킹집단으로 추정되는 ‘원전반대그룹’이 8월 정부기관에서 빼냈다는 문건을 공개했다.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이 중국 측 제안이라면서 ‘북한지역을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4개국이 분할 통제하는 방안 논의’를 합참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작성 주체나 내용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광복 직후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연상케 하는 발상이 중국 쪽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문건이었다.


中, 한반도서 국제법 어기면

“중국이 국제규범이나 법을 준수하는 데 실패한다면 한국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을 때, 왜 하필 이 문건이 떠올랐을까.

오바마는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패권주의 행태를 비판해 달라는 의미였다는 게 내외신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하지만 내게는 “바로 옆에 사는 거대한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당신(한국)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더 크게 들렸다. 언젠가는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군대를 이북지역에 진주시키는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국만이 아니다. 주변 강국이 우리와 다른 국제규범을 갖고 있고, 그 규범을 지키지 않는 재앙은 일본 쪽에서도 올 수 있다. 국방부는 20일 한일 국방장관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걸 누락했다. 일본 자위대가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의도가 담긴 발언이었다. 국방부의 설명이 맞는다면, 비공개 합의를 깬 일본의 의도적 뒤통수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중무장한 일본의 장기 전략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국민을 위험 지경에 몰아넣는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미일동맹에 근거해 미국과 공조작전을 펼 공산이 크다. 북한의 노동미사일 공격 등으로 일본이 위험에 처할 경우 독단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국이 영역주권을 갖고 있는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한미동맹에 따른 한국의 조치가 우선이며, 제3국인 일본은 단독으로 개입할 근거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하는 이유다.

남북이 1991년 유엔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법상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남북 분단이 일본의 강점(强占)에서 비롯됐다는 역사로 볼 때 일본의 북한 진입은 불행했던 과거의 되풀이로 비칠 수밖에 없다.


日의 北진입 가능성 차단해야

북한 정권이 사실상 붕괴 수준에 이를 경우, 북한의 주민·영토에 대한 관할권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헌법상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남북전쟁 당시의 미국이나 분단기의 동서독 관계와 마찬가지로 남북한은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특수 관계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도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로 규정하지 않았던가.

어제 오늘 도쿄에서 한국 미국 일본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안보토의(DTT) 실무회담이 열리고 있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특수성에 비춰볼 때 북한 지역에 일본 자위대가 우리의 동의 없이 들어가는 것은 남한 영토에 무단으로 들어서는 것과 다름없는 ‘침략’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반도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가 현실화했을 때 행여 북한에 진주하려고 들지도 모를 중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일본의 괴이한 발언에도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박성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