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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네시스가 던진 名品 시장 도전장

바람아님 2015. 12. 1. 09:52

(출처-조선일보 2015.12.01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 상학부 교수)


최용훈 일본 도시샤대 상학부 교수1989년, 도요타는 렉서스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세계 고급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세계화의 상징으로 렉서스를 인용했을 때, 
고급차 시장에서 렉서스의 지위는 흔들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렉서스는 북미 시장에서 성과를 이뤘을 뿐, 세계 고급차 시장 전체에서의 위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벤츠, BMW, 아우디로 대표되는 독일 3대 브랜드가 약 70%의 시장을 점유한 데 반해, 
렉서스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고급차 브랜드에 대해 
"전통이 없고, 서사가 없다"고 혹평했다.

고급차가 가지는 의미는 시장 규모와 성장률에만 있지 않다. 
이 시장은 대중차와 비교할 수 없이 부가가치가 높다. 
애스턴 마틴사 CEO 앤디 파머는 고급차가 자동차 업계 전체에서 판매 대수의 12%, 이익의 50%를 차지한다고 했다.

일본 경영인들과 만날 때마다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당신들은 그토록 훌륭한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물건 만들기)' 문화와 
오랫동안 좋은 물건을 소비하며 축적해온 센스를 갖고 있으면서, 
명품 시장에서만은 왜 항상 자기 가치를 홍보하지 못하고 이용자로 자족하는가.
이는 한국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난달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브랜드로 세계 고급 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렉서스 사례에서 보듯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런 시장에서는 기능이나 품질 같은 객관적 요인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여기는 전통이나 스토리, 의미, 상징성 등 무형의 가치들이 빛을 발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경쟁 우위의 핵심인지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선발자들에 대한 벤치마킹이나 모방도 힘들다.

그럼에도 제네시스의 시도는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소비재 분야에서 지향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존 제품의 성능을 점진적으로 개량하는 존속성 혁신은 
가격 파괴를 무기로 한 파괴적 혁신자들에 의해 도태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일본과 한국의 많은 기업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 기업의 저임금을 배경으로 한 공세로 인해 밟아 온 전철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소비재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고급품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적어도 소비재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 수준이 제품 개발이나 디자인, 품질 문제로 발목 잡힐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고급품 시장 진입의 걸림돌이 되는 시대도 지났다. 
세계 명품 시장 보고서를 매년 발표하는 베인 앤드 컴퍼니는 한국이 세계 명품 시장에서 트렌드세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필요조건은 충족됐다. 
우리 기업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고급품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진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라이선스나 직수입으로 외국의 고급 브랜드를 들여와 안이하게 고수익을 올리려는 이용자 혹은 구경꾼의 자리를 박차고, 
경쟁의 무대에 올라설 것을 선언한 현대자동차의 결정이 다른 소비재 분야에도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