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1.02
#지난해 12월 2일. 중국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목인 창러(長樂) 진강투이(金鋼腿). 저멀리 대형 선박들이 출항하는 모습이 보인다. 명나라 정화(鄭和,1371∼1433)함대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남중국해와 인도양,아프리카 연안까지 30여 개국을 원정할 때 항해를 시작했던 곳이다.강폭이 족히 수km는 돼보이는 민장 하구에 거대한 정화 조각상이 우뚝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조각상 높이 14.05m는 첫 원장에 나선 1405년을, 초석 2.8m는 28년간의 원정 기간을 의미한다.
#같은 달 6일. 푸젠성 샤먼(厦門)의 구랑위(鼓浪嶼).19세기말 중국을 침략한 서구 열강의 대표주자였던 영국이 조계(租界)를 설치하고 약탈적 무역을 했던 곳이다. 유명 관광지로 변신한 이곳은 중국인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객들로 넘쳐난다.그러나 이 섬에 들어가려는 외지인은 황당한 차별대우를 감수해야 한다. 구랑위에서 배로 5분거리인 샤먼항 허핑(和平)부두는 샤먼 시민 전용이어서 외지인은 이용할 수 없다.외국인을 포함해 외지인은 배로 20여분이나 걸리는 샤구(厦鼓)부두를 이용해야 한다.요금도 허핑부두(편도 8위안,약 1430원)의 4배가 넘는 35위안을 내야 한다.푸념하고 따져도 소용없다.이런 막무가내식 배짱은 어디서 나올까.
청나라 때 네덜란드로부터 대만을 수복한 정성공(鄭成功·1624∼1662)장군의 동상을 둘러보고 구랑위를 빠져나올 무렵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스위스 인터내셔널 호텔 인근 샤먼 허핑 항구 쪽에 정박해있는 중국 해군 동해함대 소속 스텔스 구축함 두 척에 답이 있었다.19세기말에 '아시아의 병자'로 조롱당하던 중국이 이제는 당당하게 군사대국으로 변신해 자국 이익을 한치 양보 없이 지키겠다는 실력 과시처럼 비쳐졌다.
중국이 다시 바다로 향하고 있다.고대부터 대륙과 바다를 동시에 호령했던 중국은 명나라 중기 이후 대륙국가로 위축됐다.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다시 175년이 지나 체력을 회복한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시 힘을 해양으로 투사하려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게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이다이이루(一帶一路·one belt one road)구상이다.이는 고전적 의미에서 동서 바닷길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넘는 중층 복합적 개념이다.각각의 항구는 다시 육상의 벨트와 연결돼 거미줄 같은 망상으로 세계를 촘촘히 엮어내게 된다.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14개 주변국가를 연결한 뒤 다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계시키는 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에,중국 연해에서 출발해 인도양-지중해-남태평양을 연계해 개발하려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결합한 해륙(海陸)복합 구상이다.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도 맥이 닿아 있다.한·중이 윈윈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2015년은 명나라 정화 함대의 원정 610주년이었다.영국의 탐험가 월터 랄리(1552~1618)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고 역설했다.중국이 '바다의 고속도로'를 뚫으려는 이유다.
2016년 병신(丙申)년을 맞아 중앙SUNDAY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루트를 따라 대탐사에 나선다.남중국해 연안의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인도양,아프리카,홍해,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따라 펼쳐진 해양 문명의 자취를 찾아 21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번 탐사에는 본지 취재진과 함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원장 김성귀),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 주강현 원장이 동행한다.
명나라 황제가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던 '해금(海禁)'정책을 폈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의 빗장을 푸는 또 다른 해금(解禁) 쪽으로 180도 방향을 바꿨다.중국은 왜 다시 바다로 나가려는 것일까.이런 질문을 들고 중앙SUNDAY 해양 실크로드 문명 탐사대 1진은 지난해 11월30일부터 8일동안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인 푸젠(福建)성과 광둥(廣東)성을 찾았다.중국에서 21세기 해상실크로드 전략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푸젠사회과학원은 이미 1991년에 중국 해상실크로드 연구센터를 만들었다.시진핑 정부 들어 2104년 3월 화차오(華僑)대학에 해상실크로드연구원을 열었고 2015년 6월에는 푸저우대학에 해상실크로드 핵심구건설연구원을 새로 만들었다.
리훙제(李鴻階)푸젠성 사회과학원 부원장 겸 중국 해상실크로드 연구센터 주임은 "해상실크로드 전략 차원에서 바닷길 건설,항공허브 구축, 육해 연계 교통로 건설, 정보통신 통로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며 "샤먼에 신공항을 건설하고, 동남항운센터와 크루즈모항도 짓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4월 푸저우·샤먼·취안저우(泉州)·장저우(?州)·푸톈(蒲田)·닝더(寧德) 등 6개 도시를 해상실크로드협력전략지점으로 지정했다.대규모 항구가 건설되고 연해 도시들을 고속철로 연결하고 있다.리훙제 부원장은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고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64개국 44억명과 일대일로를 구축하려는 것은 중국이 세계와 융합해 다함께 발전하고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중국은 혼자 즐기는 것보다 다같이 즐기는(獨樂樂不如衆樂樂) 방향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젠성 6개 도시중에서 취안저우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선행구 지위를 얻었다.송나라 때부터 해상 실크로드 무역으로 번성했던 역사적 유래가 작용했다.취안저우는 불교와 도교는 물론 힌두교와 이슬람이 공존했던 도시다. 취안저우 교통사박물관에서 만난 딩위링(丁毓玲·51·여)관장은 "나는 1000여년전 취안저우 진장(晋江)지역에 정착한 아랍계 이슬람교도의 후손"이라고 당당히 소개했다. 그는 원나라 때 3등급이던 한족이 신분상승을 위해 색목인(서역인)과 통혼하면서 융합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진장에서 만난 이슬람교협회 마창안(馬長安)교무담당은 "과거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은 중국의 한족 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면 현지에 정착해 생존하기 어려웠다"며 "심지어 이곳의 이슬람교도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한족처럼 돼지고기까지 먹게 됐다"고 말했다.
진장딩스(丁氏)사당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됐다. 2007년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스포츠용품 대기업인 안타(安踏)그룹의 딩스중(丁世忠·46)회장이 아랍인 후손이란 사실이다. 중국 1위 패션스포츠 용품업체 터부(特步)유한공사의 딩융보(丁永波·46)총재도 같은 집안이다.약 1000년 전에 아랍인들이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정착했고,다시 1000년이 지나 중국 땅에서 대기업을 일궈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따라 다시 전세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
광둥성에서 해상실크로드의 중심도시는 역시 광저우다. 19세기 말에 세관이 있던 곳 주변의 샤몐(沙面)거리의 옛 영국 영사관 앞에는 중국인과 영국인이 거래하며 주판알을 굴리는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다. 그만큼 광저우는 자고이래로 산물의 집산지이자 무역의 중심지였다.광저우는 신생 독립국이던 미국이 처음 중국과 만난 곳이기도 하다. 미국 선박 중국황후호(Empress of China)가 1784년 2월22일 뉴욕항을 출항했다. 배는 1만3000해리를 6개월6일간 항해해 8월28일 광저우 황푸항에 도착했다. 모피와 면화 등을 중국에 팔고 차잎·도자기·실크·향신료를 사서 12월28일 다시 출항했다.중국황후호는 3만달러의 순이윤을 남겼다. 영국이 당시 미국 대륙에 금수조치를 내리면서 궁지에 몰렸던 미국에게 중국은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국 관계가 됐다.특히 남중국해를 무대로 한 치 양보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21세기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려면 반드시 뚫고 지나가야 할 관문이 바로 남중국해다.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의 반발이 거세다.무엇보다 미국의 견제는 노골적이다.남중국해가 중국 해양 실크로드가 넘어야할 첫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장애물이라는 인식은 중국 국내 전문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천궁위(陳功玉) 광둥성 중산(中山)대 공상관리과 교수 겸 광둥남방해양연구원장은 "일대일로의 궁극적 목적은 포화상태인 중국 상품의 수출로를 확보하자는데 있고 중국 제품 수입국들의 물류 인프라 구축을 중국이 도와주려고 한다"며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인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중국은 패권국인 미국과의 전쟁이라는 극단적 충돌 없이 21세기 해상실크로드를 평화롭게 개척할 수 있을까.장윈링(張蘊?)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남중국해는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점인데 첫발을 잘 디뎌야 중국이 밖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다"며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으로) 어떻게 평화로운 발전을 이룰 것인지 전세계에 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저우·푸저우·샤먼·취안저우=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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