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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부부의 비극, 4년간 치매 아내 보살피다가 끝내…

바람아님 2013. 5. 17. 23:06

老부부의 비극, 4년간 치매 아내 보살피다가 끝내…

80대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던 부인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저수지에 돌진해 숨졌다. 주민들은 "늘 손을 꼭

잡고 다닐 만큼 금실 좋은 부부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13일 오후 4시 20분쯤 경북 청송군 부남면의 한 저수지에 승용차가 빠져 있는 것을 산불감시요원(66)

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저수지 둑 가장자리에 흰색 비스토 차량 1대가 물에 잠겨 있었고, 차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 시신 1구가 떠올라 있었다"고 말했다.



 

14일 경북 청송군 부남면 이모·채모 부부가 살던 집을 한 주민이 바라보고 있다.

 

 

 

 

경찰이 견인차량 등을 불러 들어 올린 차량은 창문이 모두 열려 있었고 운전석에는 안전벨트를 맨 백발의

노인이 숨져 있었다. 차적 조회 결과 인근 마을에 사는 이모(88)·채모(83)씨 부부임이 확인됐다.

'이 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

노부부와 함께 생활한 막내아들(55)은 사건 직후 아버지 방에서 A4용지 1장 분량의 유서를 발견했다.

이씨는 유서에서 '미안하다. 너무 힘이 든다.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식과 손주들

이름을 일일이 적으며 작별 인사를 남겼다. 경찰은 "부인이 4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이씨가 힘들어했고,

정신이 온전할 때 부부가 자살을 약속한 것 같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이씨 부부가 살던 마을 당나무 앞엔 빈소에 가려는 60·70대 주민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

이순자(63)씨는 "어제 사고 소식을 듣고 주민 대부분이 마을회관에 모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본받을

점이 많았던 어른들이 떠나셨다는 소식에 모두 일도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북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사과 농사를 지어온 부농(富農)이었다. 35년 전 2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들어와 농사에 전념했다.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 과수원이 19만8000여㎡(6만여평)에 이르고,

함께 일하는 종업원이 50~60명에 달했다. 몇 해 전부터는 경북도가 조사한 억대 부농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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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대단한 부농이면서도 새벽 6시만 되면 밭에 나가 일을 했고, 일꾼들과 같이 밥을 먹을 만큼 성실하고

소박했다고 한다. 마을회관과 경로당, 농산물 집하장 터를 무료로 기증하기도 했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무엇이든 후하게 나눠줬다.

이씨 부인과 자녀들(3남 2녀)은 4년 전까지는 경산에 살며 가끔 이곳을 들렀다. 하지만 2009년부터는

교사생활을 하던 막내아들이 퇴직해 농사를 도왔고, 작년 9월부터는 부인도 청송에 들어왔다고 한다. 주민

임영순(62)씨는 "할아버지가 평소 할머니의 치매를 걱정해 식사 때마다 할머니를 찾곤 했지만, 실제

할머니는 아파 보이지 않았다. 자주 이웃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어버이날엔

할머니가 경로당에 쌈짓돈을 내놓아 주민들이 닭백숙을 끓여 먹었고, 지난 3월 20일 마을 어른 30여명이

부산으로 나들이 갔을 땐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녀 다들 부러워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끔 할머니 병세가 심해져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부부는 요양원에 가기를

싫어했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죽고 난 뒤 혼자 남을 할머니가 걱정돼 이 같은 결심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 부부처럼 동반 자살하는 노부부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대구에서는 평소 "같이 죽어야지"

라고 말해온 남모(85)씨와 부인 이모(81)씨가 목을 매 숨졌고, 같은 달 대전에서는 부인(77) 병시중을

견디다 못한 남편(89)이 연탄을 피워 자살을 기도해 남편은 숨지고 부인은 중태에 빠졌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자살예방센터 정택수 소장은 "가족관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 이제 1인 가족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노부부들은 '독거 노인'이 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며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혼자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느니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최후를 맞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반 자살하는 노부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