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들 "일반인 누드 의뢰 급증…한 달에 5건 이상"
전문가 "사회생활하며 쓰는 '가면' 카메라 앞에서 벗어"
도색잡지의 대명사 '플레이보이'의 최고경영자 스콧 플랜더는 작년 10월 "2016년 3월부터 잡지에 누드 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제 온라인에서 클릭 한 번으로 뭐든지 볼 수 있다"면서 "누드 사진은 유행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 가치관으로 본 누드 사진의 시대는 저물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드 사진은 이제 남성들의 성욕을 달래주는 성인물로서가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자긍심을 확인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새롭게 탈바꿈해 유행하고 있다.
프리랜서 번역가 정숙빈(34·여)씨는 2년 전부터 '누드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았다. 그는 전문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콘셉트로 촬영하고 전시회에도 자신의 누드 사진을 내건다.
정씨는 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누드 작업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고 내면의 우울함이 해소돼 삶의 질이 좋아졌다"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제는 카메라 앞에 나체로 서는 것이 낯설지 않은 그도 처음에는 촬영이 쉽지 않았다.
정씨는 "몸이 가장 젊고 예쁠 때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사진작가를 찾아갔지만 막상 낯선 이 앞에서 발가벗자 선뜻 자세가 취해지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점점 과감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서 결과물을 보자 왠지 울컥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혼잣말처럼 글을 쓰지만 실은 지인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느냐"면서 "SNS를 '정서적 노출'로 본다면 누드 촬영 역시 내면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일각에서는 '야한 거 찍느냐'면서 내가 포르노를 찍는 것마냥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을 일일이 설득할 생각은 없다"면서 "더 많은 사람이 누드에 도전해서 나처럼 긍정적인 감정 변화를 느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정씨처럼 누드 사진 촬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감정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려는 20∼30대 여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이 넘는 사진작가 이상헌(40)씨는 "작년의 일반인 누드 작업 건수는 재작년의 3배 정도로 많았다"면서 "오직 몸과 표정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조금 더 내밀한 자신과 가까워지는 경험들을 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예명 '레토'를 사용하는 사진작가 이모씨는 "한 달에 6∼7명꼴로 일반인 여성의 누드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직 누드가 낯선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이상해 보이겠지만 의뢰인 중에 노출증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웃었다. 대부분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간직하고 싶어서 누드 촬영을 문의해 온다고 이씨는 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2만1천여명의 팬을 둔 사진작가 김경래(30)씨는 "취업준비생, 간호사, 헬스 트레이너 등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누드 작업을 의뢰해 온다"고 말했다.
누드 사진은 '설렘'이라고 표현한 김씨는 "누드를 찍겠다는 용기를 냈을 때의 설렘과 훗날 젊은 시절의 사진을 꺼내 보며 추억할 설렘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누드를 찍는 듯하다"고 전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누드 촬영 유행 현상에 대해 "사회생활에서 '가면'을 쓰고 자기 감정을 속이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은 SNS나 사진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노출하고 싶어한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2030세대는 외모를 중시해서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도 덩달아 강하다"면서 "누구나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세대다 보니 카메라 앞 두려움도 적어서 누드 촬영도 꺼리지 않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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