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도 침침한 야삼경에 두 사람 마음만큼은 두 사람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에 있는 시(詩)다. 혜원은 교교한 달빛이 비치는 자정(삼경)에 남녀가 밀회하는 장면을 포착했다(사진). 분명 부부관계는 아니다. 유교적인 사회질서가 뿌리박힌 조선 후기의 사회….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남녀간 피어나는 사랑을 어찌 억누를 수 있는가.
‘야합(野合)’이란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들판에서 정을 통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야합이 없었다면 역사는 불세출의 인물들을 창조하지 못했다. 공자를 보자.
“흘은 안씨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사기> ‘공자세가’) 환갑을 넘긴 공자의 아버지 공흘과 스무 살도 안된 처녀 안징재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뭐, 중국에서 찾을 것도 없다. 김유신의 부모를 보자.
“김유신의 아버지(서현)가 길에서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눈짓으로 꾀어, 사통했다. …만명의 아버지가 딸의 야합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20개월 만에 유신을 낳았다.”(<삼국사기> ‘김유신전’)
야합이 없었다면 공자와 김유신이 태어났을 것인가. 그렇다면 역사, 그 자체가 ‘야합의 역사’인가.
“하백의 딸 유화입니다. 한 남자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라면서 집으로 나를 유인하더니 정을 통하고 갔습니다. 그런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삼국유사> ‘고구려조’)
이렇게 야합으로 태어난 이가 고구려 시조 주몽이다. 그래서인가.
“풍속에 음란하며,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유녀(游女)가 많다. 아무나 지아비로 삼는다(風俗尙淫 不以爲愧 俗多游女 夫無常人).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지어 논다.”(<남사>)
고구려 거리를 떠도는 유녀가 많았고, 남녀가 불야성을 이루며 놀았다는 기록이다.
“결혼을 할 때는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인정한다(有婚嫁 取男女相悅卽爲之).”(<북사>)
연애결혼을 인정한 것이다. 고구려의 풍습이 얼마나 자유분방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연애와 연애결혼의 뿌리는 이렇게 깊다. 하지만 꽃피는 춘삼월이다. 이쯤해서 백거이(白居易)의 시를 새겨보면 어떨까.
“철없는 여염의 여인들아. 가볍게 몸을 허락하지 마라(奇言癡小人家女 愼勿將身輕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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