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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권영민]평화의 소녀상과 간디 동상

바람아님 2016. 1. 11. 00:27

동아일보 2016-01-09 


英의회광장 간디동상, 식민지 지배 사죄 담겨 총리가 직접 동상 제막
위안부 합의 발표 직후 日, 소녀상 이전 거론… 과거사 반성 아직 멀어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작은 동상은 서울만이 아니라 수원, 울산, 광주, 포항 등 여러 도시에도 세워져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와 미시간 주에도 세워졌고, 2015년 11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도 건립되었다. 이렇게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기억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상징물이 되어 그 공감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그런데 일본 언론에서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 타결되었다고 발표한 날부터 연일 소녀상의 철거 이전을 거론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공식적으로 표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약삭빠르게 나대는 일본 언론을 보면 그 사과 발표라는 것도 별로 믿음이 가질 않는다. 일본 측의 태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는 저들이 늘 과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잔꾀를 부려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을 비켜 나가는 데에만 힘을 기울였다. 자신들의 엇나간 행동으로 한일 간 불신의 골이 깊어졌는데도 오히려 저들은 의심의 눈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힐난한다. 한국을 경시하고 기만하고 억압하고 착취했던 것이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저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국제 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일본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일 뿐 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별로 없다.

지난해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의회 광장에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세워졌다. 간디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경제적 착취를 계속하는 동안 이에 맞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1915년 인도의 독립운동을 위해 남아프리카에서 인도로 돌아온 후 영국의 부당한 식민지 정책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다. 간디재단에서는 간디의 귀국 100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그의 동상 건립을 계획했는데, 영국 정부가 그 동상을 런던 의사당 앞 의회 광장에 세울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동상 제막식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분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동상 건립의 의미를 말했다. AFP통신도 이를 두고 ‘과거를 기억하려는 영국 나름의 방식이자 역사에 대한 일종의 사과’의 뜻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아베 일본 정부의 협량(狹量)과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비뚤어진 역사인식 때문에 거기 그렇게 서 있다. 치욕의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끝내 외면하고, 과거사를 부인하기에만 급급했던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소녀상을 거기 들어서게 한 것이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선언하자마자 기껏 꺼내든 첫 카드가 소녀상의 철거 이전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일본은 경제 강국에서 군사 대국으로까지 나아가겠다고 야단이다. 이런 식의 알량한 태도로는 일본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국의 자격을 인정받기 어렵다. 세계 평화를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일본은 마땅히 먼저 통절한 자기반성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오늘도 평화의 소녀상은 말이 없다. 길 건너 일본대사관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 처연한 눈빛을 보면 가슴이 저리다. 비정한 일본을 건너다보는 눈빛에는 저주가 아닌 비애와 연민이 가득하다. 무릎 위로 가지런히 올려놓은 두 주먹이 분노를 참아내고자 하는 결의를 보여주지만, 소녀상의 굳게 다문 입은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 말없음과 무표정이 오히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치는데, 이제 일본을 향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것인가.

권영민 문학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