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월드리포트] 북한이 사고 치면 중국만 바라보는 그 난감함

바람아님 2016. 1. 13. 00:42
SBS 2016-1-12

북한이 수소탄 실험이라는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자 한국, 미국, 일본은 일제히 중국을 쳐다봅니다. 이런 눈초리입니다.

"뭐야, 북한이 또 사고 쳤잖아! 중국 너희는 뭐했어? 왜 좀 관리를 잘 하지 않는 거야? 더 엄하게 혼을 내서 저런 짓을 못하게 해야지!"

중국은 이에 대해 볼멘소리를 합니다. "왜 나한테만 그래? 북한이 사고 친 게 내 탓이야? 나만 책임이 있어? 다 같이 노력했어야지.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데?"


● 중국에 대한 우리의 오해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강행한 지 3시간 만에 중국 정부는 공식 반응을 냈습니다. 분노가 묻어나는 어조였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이번에 북한은 '우리 핵 실험 한다'는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속된 말로 '왕무시'를 당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 정부와 한국 언론(저를 포함한)들의 반응에는 기대감이 묻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이 진짜 화가 났나보다. 북한에 대한 매질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이번에야 말로 북한 진짜 큰일 났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의 어조는 달라집니다. 북한의 잘못은 잘못이지만 북한을 지나치게 몰아붙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 가능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는 기존의 화법이 다시 나옵니다. '제재' 보다는 '대화'에 무게가 실립니다.

이번에도 첫 성명에는 '냉정과 절제'라는 상습적으로 내놓는 단어를 빼서 엄한 제재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미 공군의 B52가 한반도 상공에 나타나자 결국 상투적인 단어를 꺼내듭니다. "유관 각국이 절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해 긴장상황이 커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바란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중국이 처음에는 그러지 않더니 왜 다시 옛날 태도로 돌아간 것이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하지만 이 모든 시각과 생각은 순전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방의 오해일 뿐입니다. 중국의 태도는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중국은 북핵에 대응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한반도 비핵화 2)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3)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경우에 따라 순서를 달리 하거나 강조점에 변화를 주지만 셋 중에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습니다.

이번 북한의 수소탄 실험 국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반에는 '1)원칙'을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북한이 워낙 큰 사고를 쳤기 때문에 '혼나야 마땅한 일'이라고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톤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서방 언론들이 가능한 재제 수위를 한 없이 높였습니다. 심지어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잠그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것처럼 떠듭니다. 중국은 톤 다운을 시도합니다. '2)와 3)원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밉고 싫어도 주먹 휘두르며 싸울 수는 없잖아. 싸움이 나면 모두에게 손해가 될 뿐이지. 그러니까 대화로 푸는 수밖에 없어."

결국 중국 당국의 말은 위 세 가지 원칙의 반복되는 변주일 뿐입니다.


● 中 "제재는 한다. 하지만 망하게는 안 한다"

그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G2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중국 입장에서 그냥 어물쩍 넘어갈 명분은 없습니다. 아울러 진심으로 북한이 핵을 갖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한, 미, 일 동맹을 강화시키고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며 핵 보유 도미노를 촉발하는 등 그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코 앞에서 자꾸 세계 질서를 흐리는 북한의 행동이 몹시 마뜩치 않습니다. 이제는 중국의 권고를 귓등으로도 안 듣는 북한의 태도가 매우 불쾌합니다.


따라서 중국이 국제 사회의 제재에는 동참할 것이 분명합니다. 북한이 핵 도발에 대해 일정 부분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하는데 대해 괴로움을 느끼도록 만들 것입니다. 이런 큰 방향은 한, 미, 일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은 전혀 다릅니다.  한, 미, 일은 북한을 정권 붕괴의 국면까지 몰아서 강제로, 하루 빨리 핵에서 손 떼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도 상관없습니다. 이른바 '레짐 체인지'입니다.

반면 중국은 북한 현 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 붕괴 과정에서 북한이 전면전 등의 도발을 감행하거나, 무질서한 붕괴로 대량의 난민이 발생해 중국 역내로 밀려들어오거나, 통합 한국의 형성으로 미군 세력이 중국의 턱밑까지 접근하는 등의 상황을 어느 것 하나 용납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제재를 하더라도 북한 정권의 생존이 위기에 처할 만큼 몰아붙이지는 않습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괴로움, 중국이 원하는 바입니다.

● 중국의 딜레마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의 딜레마가 시작됩니다. 앞서 설명해드린 여러 이유로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중국은 한, 미, 일과 한 편입니다.

하지만 한, 미, 일과 보조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행동의 통일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독자적으로 해법을 내놓지도 못합니다. 중국이 염불처럼 되뇌는 것이 '대화와 협상'입니다. 아울러 '6자 회담의 틀 속에서 진행하자'고 한결같이 주장합니다. 6자 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해법이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6자 회담은 현재로서는 빈사 상태입니다. 어렵게 도출한 9.19 합의와 10.3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된 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6자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 유인책조차 찾기 힘듭니다. 6자 회담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이집트 미라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준의 '미션 임파서블'이 됐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습니다. 장성택의 처형 이후 북한 내에 중국과의 가교 역할을 담당할 변변한 인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가 없습니다.


● 美-中 서로 '네 탓'

중국의 어정쩡한 이런 태도에 대해 한, 미, 일은 불만을 나타냅니다. 세 나라의 당국자나 언론은 북한 문제와 관련한 말을 항상 이렇게 끝냅니다. "중국만 제대로 나서면 해결될 텐데."

케리 미 국무장관은 며칠 전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통화에서 대놓고 이런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중국이 원하는 특별한 대북 접근법이 있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자 동의하고 존중해 왔지만, 그 방식은 작동하지 않았고, 우리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대응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의 속내를 조금 더 알기 쉽게 풀어볼까요? "중국 너희들이 고집을 펴서 너희 하자는 대로 따라줬잖아. 그런데 이게 뭐니? 북한 핵이 해결되기는 커녕 갈수록 꼬이고 있잖아! 이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하는 네 방식대로 할 수 없거든."

이에 대해 왕이 외교부장은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다른 국가들도 냉정하게 행동해야 하고 평화적 해결이라는 큰 방향을 유지하면서 갈등을 키우고 긴장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피해야 합니다."


역시 조금 쉬운 말로 바꿔볼까요? "아니 그럼 북한에 주먹질이라도 하자는 말이야? 그러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북한을 마구 갈군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니? 싸움만 나서 너 죽고 나 죽는 판 되는 거지."

중국의 외교 관계자나 관련 학자들을 만나보면 거꾸로 미국에 대한 불만이 대단합니다. 북핵 문제는 결국 미국이 키워놓았다고 주장합니다.


"'전략적 인내'라는 해괴한 논리가 어떻게 해법이 됩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얘기지. 결국 '북한의 핵 개발을 묵인 하겠다'는 것 외에 무슨 뜻입니까? 북한이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 핵무기를 만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결국 미국과 전략적 협상을 벌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 핵 문제를 풀 당사자는 우리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뜻입니다. 왜 자신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뒷짐 지고 서서 중국에 대고 해결해라, 모든 책임을 지라고 합니까?"


●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핵 위기가 고조돼 세계가 불안한 눈으로 한반도를 바라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과 북이 짊어집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미국이 북한의 핵 시설 폭격에 나서고 그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면 불바다가 되는 것은 한반도입니다. 북한의 마지막 발악으로 핵폭탄이 몇 개 터지면 이 지상에서 절멸되는 것은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는 손 놓고 주변 강대국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미, 일은 중국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절대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정부는 때마다 북한에 말합니다. "핵무기만 내려놓으면 먹고 살게 해줄게." 궁금합니다. 정말 이 말을 듣고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을 것이라 믿는 것일까요? 그저 북한이 저러다 제 풀에 풀썩 망하겠지, 이런 막연한 기대에 우리 민족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우상욱 기자woosu@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