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2.05 유용원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다."
존 K 싱글러브 주한 미8군 참모장은 1977년 5월 미 워싱턴포스트지 인터뷰에서 군 통수권자인 카터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싱글러브는 "카터 행정부의 주한 미 지상군 철수 계획은 2~3년 전의 낡은 정보에 근거해 취해진 것"이라며
"현재의 북한군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싱글러브는 며칠 뒤 백악관에 호출돼 카터 대통령과 30분간 면담한 뒤 해임됐다.
▶싱글러브는 며칠 뒤 백악관에 호출돼 카터 대통령과 30분간 면담한 뒤 해임됐다.
당시 세계 언론은 6·25전쟁 때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반목을 떠올리며 이 사건을 큰 뉴스로 다뤘다.
나중에 한국군 장군이 그를 초청해 위로연을 베풀며 "가만히 있었으면 별 몇 개 더 달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별 몇 개를 수백만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2차대전 때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조지 패튼 장군은 '싸움닭' '전쟁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미 육사 재학 시절 지진이 일어나 생도들이 당황해 허둥지둥 대자 생도들 앞에 나서
"생도들 차렷! 당황하지 마라. 지진은 곧 끝난다"고 했다.
패튼은 불같은 성격에 안하무인의 태도로 적이 많았지만 싸움터에선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우리 군에도 강골(强骨)과 소신으로 이름난 장군들이 없지 않았다.
▶우리 군에도 강골(强骨)과 소신으로 이름난 장군들이 없지 않았다.
베트남전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6·25전쟁 때 '백골병단'이라는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
목숨 걸고 후방교란 작전을 펴며 큰 전공을 세웠다.
파월 한국군을 지휘하며 국민적 스타가 됐지만 3선 개헌과 유신 헌법에 반대하다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2013년 세상을 떠나면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고 해 장군으로는 처음 사병 묘역에 안장됐다.
▶1973년 3월 북한의 기습 사격에 대응해 포 사격 명령을 내려 북한군 수십명을 사살한 박정인 전(前) 3사단장이 별세했다.
이 보복 공격은 국군이 북한군의 DMZ(비무장지대) 도발을 피로 응징한 마지막 사례로 꼽힌다.
당시 그는 상부의 허락 없이 대응 포격을 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됐다.
우리 군에선 1990년대 들어 정책통들이 군 수뇌부를 대거 차지하면서 '강골 야전군인'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으로 안보 위기를 겪고 있어 그런가.
장군다운 장군이 더욱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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