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는 죽었다.
"틱스여 영원하라(The BRICs are dead. Long live the TICKs)”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8일 이 같은 제목과 함께 신흥국 성장의 주역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대 초반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로 대표되는 신흥국의 성장엔진이 바뀌었다는 분석이었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B(브라질)와 R(러시아)이 빠지고 첨단기술 비중이 높은 T(대만)과 K(한국)이 새로운 자리를 차지했다."틱스여 영원하라(The BRICs are dead. Long live the TICKs)”
틱스의 부상은 신흥국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제조업과 에너지 산업 중심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소비 위주로 바뀌고 있음을 나타낸다.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원자재 시장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브라질·러시아를 비롯한 상품 수출국의 시름은 깊다.
2001년 브릭스란 용어를 처음 만든 골드만삭스가 지난해 11월 자신들이 만든 '브릭스 펀드'의 판매를 중단했을 정도다. 골드만삭스는 브릭스 펀드에서 최근 5년 동안 20%가 넘는 손실이 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브릭스 펀드가 포함된 신흥국 주식 펀드의 1년과 3년 수익률은 각각 -22.1%와 -26.9%다. 같은 기간 해외펀드의 수익률 -14.7%와 -7.7%보다 훨씬 낮다.
반면 C(중국)와 I(인도)는 신흥 성장국의 자리를 지켰다. 비결은 기술이다. 중국은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고 위안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출·제조업 중심에서 내수·소비 위주의 성장 모델로 체질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최근 IT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뜨고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는 지난해 말 신흥시장지수에 알리바바와 바이두, 넷이즈 등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IT 기업을 편입시켰다. 인도 역시 IT를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예전부터 대만과 한국도 최근의 성장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IT 기업은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다.
세계 투자 자금은 실제로 브릭스에서 틱스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코플리 펀드 리서치에 따르면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전 세계 주식형 펀드에서 틱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평균 54%다. 3년 전엔 40%였다. JP모건·노르디아·스웨드방크 등 유명 투자회사들은 한국과 대만의 비중만 35%가 넘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 주식 중에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삼성전자와 TSMC다. TSMC는 대만의 대표적 반도체 생산업체로 대만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관련 신흥국 투자는 줄어들었지만, 신흥국 펀드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며 “브릭스의 부진 속에도 틱스가 대안으로 부상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틱스의 부상은 외국인의 투자 인식에 변화를 줘 국내 주식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브릭스(BRICs)=2001년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짐 오닐이 만든 용어. 브라질(Brazil)·러시아(Russia)·인도(India)·중국(China) 4개국의 영문 머리 글자를 딴 용어는 그동안 신흥 경제대국의 대명사로 인용돼 왔다. 경우에 따라 ‘s’에 남아프리카공화국(South Africa)를 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