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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포트 해밀턴과 켈파르트

바람아님 2016. 2. 26. 07:25

(출처-중앙일보 2012.03.20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1886년 4월 15일, 나가사키에 주둔해 있던 영국함대 사령관 도웰 제독은 본국 해군성에 급전을 보냈다.
“전함 아가멤논, 페가수스, 파이어브랜드호(號)를 발진시켰음. 목표지는 포트 해밀턴. 러시아함대는 
보이지 않음.” 포트 해밀턴-마치 야생동물들이 발톱 자국이나 오줌을 갈겨 영역을 표시하듯 영토 확장의 
본능을 주체할 수 없던 제국들이 타국 땅에 꽂은 낯선 팻말의 실제 주인은 거문도였다. 
남해 고도(孤島) 거문도가 영국의 눈에 띈 것은 1845년이었고, 그 후 이 바위섬이 제국 열강의 쟁탈전에 
내몰리는 것을 조선 조정은 알 길이 없었다.

 당시 영국 신문은 해군의 거문도 점령을 대서특필했는데, 어떤 신문은 켈파르트로 보도하기도 했다. 
켈파르트, 이 역시 17세기 열강의 범선이 우연히 발견해 작명해준 제주도의 명칭이었다. 
멀리 유럽제국 사령탑에서는 동일한 해역에 속한 제주도와 거문도가 헷갈렸을 것이다. 
조선통인 미국 제독 슈펠트가 거문도를 지중해의 지브롤터로 비유했듯 포트 해밀턴은 연해주를 점령하고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는 기막힌 요새였다. 
도쿄에서 이 사건을 접한 열강의 제독들은 단독 점령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개(러시아)의 목을 졸라 물고 있던 뼈다귀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전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김용구, 『거문도와 블라디보스토크』). 거문도에 영국 국기가 게양됐다. 
한발 늦은 열강들은 안달이 났고, 민란과 정변에 시달리던 조정은 어찌할 바를 몰라 베이징으로 달려갔다.

 남해 바다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은 12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일본은 사세보에 비장의 해군력을 갈무리했고, 미국 7함대는 일본 요코스카항에 
닻을 내린 지 오래다. 19세기의 수모를 만회하고자 중국은 최근 항공모함을 건조해 다롄항에 배치했다. 
그럼 한국은? 4강의 십자포화 한가운데에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놓인 남해는 백 년째 비어있다. 
진해·부산·동해, 이 세 개의 군항은 소형 구축함들도 버거워 항모가 접안할 수 없고, 평택과 목포는 간만의 차가 커서 
이지스함이 입항하지 못한다. 대양해군의 주력인 1만t급 독도함·세종대왕함·율곡함은 정박할 모항(母港)을 찾지 못해 
먼 바다를 헤맨다. 게다가 경제대국 한국에 물자를 공급하는 물동량의 80%가, 일본과 중국 간 해상물류의 대부분이 
통과하는 대한해협에 비상이 걸리면 주력부대인 독도함이 부산에서 발진해 현장에 닿는 데 족히 10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자부심,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께 해군기지 묘책을 물으면 우람한 칼끝으로 한 곳을 가리킬 거다. 
거북선과 판옥선의 시대라면 여수와 통영, 구축함과 이지스함의 시대라면 제주도 남단 서귀포. 
19세기 말에도 열강의 해군성과 제독들은 켈파르트의 전략적 절묘함을 탐냈고 지금도 그렇다. 
강정마을은 서귀포에서 20㎞ 떨어진 해안에 위치해 있다. 
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를 길러내는 멋진 구럼비 바위가 펼쳐진 곳에 말이다. 
1만3000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낸 4·3항쟁의 비극적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평화의 섬’ 남단이 불행하게도 첨단무기로 
무장한 4강 해군들에는 오늘날의 포트 해밀턴인 셈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탁월한 지적처럼 해양세력들의 균형추가 되는 전략 요충지다.

 구럼비 해안은 시위대의 통곡 속에 폭파되고 있다. 
말똥게와 새뱅이도 참살될 것이고, 감귤과 협죽도가 어우러진 풍족한 마을 강정은 사나운 군수차량과 냉정한 철선들로 
황량해질 것이다. 뭍사람의 팍팍한 마음을 달래는 제주도의 인류학과 민속학이, 한반도에는 결코 볼 수 없는 저 비췻빛 
바다와 초록 숲의 정취가 훼손될지 모른다. 그런데 조선 정부가 거문도의 국제정치적 위상에 까막눈이었듯이, 
우리의 국제인식에서 세계 최강 해군력이 밀집된 동북아 해역의 중앙 원점이 켈파르트란 사실을 지워버릴 만큼 평화가 
안착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기에 군항을 구축하는 것과, 21세기 지구촌 공생의 가치인 환경, 종교, 주민자치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지를 차분히 따져봐야 했다.

 우리는 지난 5년 소란했던 시간을 보내고도 양자 절충안 도출에 실패했고, 급기야 이 국가적 대업이 평택 미군기지처럼 
사생결단의 공방전을 몰고 오는 것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전형적 군항인 샌디에이고가 퇴역 군함을 배치해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듯, 민·군 복합항이란 강정의 초기 설계에 해양박물관, 해군전사관, 해양체험관 같은 역사문화 개념을 
부가하면 제주도민과 시민단체의 상실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1887년 2월 27일, 영국은 러시아에 남하정책 포기각서를 받고서야 철수를 결정했다. 
10개월에 걸친 숨가쁜 협상에 조선은 없었다. 영국 국기가 내려졌다. 
한반도는 2007년에야 우리 손으로 태극기를 꽂을 포트를, 남해와 대한해협을 지킬 군항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 중앙 원점은 백 년간 비어있었다.

 

 

 

8년만에 완공된 제주해군기지(조선일보 201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