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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러시아 철군과 동상이몽

바람아님 2016. 3. 20. 00:52
SBS 2016.03.19. 15:35

지난 15일 러시아가 시리아 주둔병력의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시리아에서 군사개입을 단행한 지난해 9월이후 6개월만입니다. 군사작전을 단행할 때도 속전속결로 진행한 러시아는 철군도 속전속결로 썰물 빠지듯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라타키아 공군기지에 주둔했던 수호이 전투기 등이 본국으로 속속 귀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철수에 대해 국제사회의 입장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각각 그 속내가 무엇인지 풀어내느라 분주합니다. 러시아의 전격 철수에 대한 이런저런 반응과 음모론을 모아봤습니다.

● 러시아 “군사적 목적 달성”, 목적이 뭐지?

철군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이유로 “시리아에서 군사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6개월동안 무수한 폭탄 세례로 군사개입 목적으로 거둘 만큼 거뒀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러시아의 군사개입 당시 시리아의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시아파로 이란.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죠)은 반군에 밀리면서 궁지에 놓였습니다. 심지어 아사드 대통령이 심각한 병력부족을 호소하면서 정부군에게 월 50달러의 급여를 더 주겠다고까지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게 시리아는 친미로 가득찬 중동.아랍권에서 유일한 우방입니다. 중동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아사드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구해야 했겠지요. 그러면서 전격적인 군사개입을 단행했습니다.



‘아사드 구하기’가 목적이다 보니 명분이야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 격퇴지만 사실은 시리아 정부 영토 주변에 몰려든 반군 지역에 러시아 전폭기의 공습이 맞춰졌습니다. 미국과 서방은(내전의 원흉이자 대량학살의 주범인 아사드는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온건반군이 주로 공격받고 있다고 러시아를 줄기차게 비난했습니다. 러시아는 그런 비난에 아랑곳 하지 않고 꿋꿋이 폭격작전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사이 시리아 정부는 약해질 대로 약해진 반군을 하나둘 처리하면서 주요 요충지를 탈환해 갔습니다.


러시아가 무차별 폭격으로 초토화를 만들면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 점령지를 포위해 보급로를 차단하는 고사작전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마다야로 이런 고사작전으로 아사직전에 처한 시리아 주민만 4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시리아는 이런 식으로 반군 지역을 하나 둘 되찾아갔고 이제는 한숨 돌릴 처지가 된 것이죠. 시리아 정부가 대략 400개 정도의 마을을 되찾았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죽어가는 이웃집 동생을 숨쉴 만큼 살려뒀으니 이제는 빠질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 실질적인 배경은 ‘돈’?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분석은 러시아로서는 경제적 부담도 배제하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러시아 경제는 푸틴 정권 이래 최악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 국제유가 폭락까지 겹쳤습니다. 국제유가가 82달러는 되야 재정수지를 맞출 수 있는데 유가 40달러이니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상황입니다. 루블화 가치는 2년 전에 비해 3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서민경제가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무작정 시리아에 돈을 쏟아 부을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러시아 측은 시리아 작전에 쓰인 돈이 우리 돈 5천 5백억원 정도로 국방비 가운데 훈련 예산을 돌려 쓴 걸로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시리아 군사행동으로 실전 훈련을 했다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5천억원이 적은 돈은 아니죠.


여기서 나오는 게 바로 러시아와 사우디의 빅딜설입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를, 사우디는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는 두 기둥입니다. 사우디로서는 시이파인 아사드 정권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회생하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을 터이고, 러시아는 사우디의 묻지마식 공급 과잉 정책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런 양측이 모종의 협상을 했을 것이란 음모설입니다.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동결하는 대신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철군을 한다’ 뭐 이런 거죠.


실제로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달 16일 원유 생산량 동결에 합의했습니다. 더구나 러시아의 철군 발표 직후 OPEC 회원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산유국 15개국이 다음달 17일 카타르에서 원유 생산량 동결을 위한 회의를 갖기로 했습니다. 또 하나, 러시아의 철군 발표에 이어 예멘에서 1년 째 군사행동에 나서고 있는 사우디가 “큰 전투가 끝나간다”면서 군사개입을 줄이기로 발표했다는 겁니다. 예멘 반군을 이란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이파 맹주인 이란은 반미를 주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러시아와 선이 닿아 있는 나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와 사우디의 밀약설’이 왠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 국제사회 ‘환영’, 아사드 ‘불안’

러시아의 철군 결정에 대해 국제사회는 쌍수를 들고 반기고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이 임시휴전을 맺고 모처럼 평화정착을 위한 논의를 시작한 마당에 군사적 위협이 하나라도 줄어 드는 걸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시리아 반군은 그 동안 협상의 조건으로 러시아의 공습 중단과 시리아 정부의 포위 해제를 요구해왔습니다.  러시아의 철군(그렇다고 러시아가 다 빠지는 것도 아니고 공군기지는 그대로 남겨두고 공습도 계속한다고 했습니다.)은 어느 부분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상충하는 부분이 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죠.


시리아 정부는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당당하게 “러시아 철군은 사전에 우리랑 다 상의한 거야”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심 “나 떨고 있니?” 라는 불안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발언과 행동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외신에 “러시아군이 일부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니다”라며 “내 뒤엔 러시아가 늘 있어”라고 떠듭니다. 러시아 역시 “시리아내 전력을 몇시간이면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다”며 아사드 동생을 혼자 남겨두지 않았다는 투의 발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대거 빠져나간 건 맞습니다. 러시아는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지체없이 돌아오는 ‘짱가’ 라고 말해주고 있지만 시리아는 홀로서기가 여전히 불안한 모습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 동안 평화회담에서 고개를 뻣뻣이 세우면서 뒤틀린 말만 해오던 시리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오죽하면 시리아정부 대표단이 반군대표단보고 구레나룻과 턱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게 IS 같다면서 수염을 깎지 않으면 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생떼까지 쓰겠습니까? 시리아 정부의 진지한 협상태도를 원하는 국제사회로선 러시아의 철수를 반길 수 밖에 없습니다.


● 얻을 건 다 얻은 푸틴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을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알 아사드 정권의 의존도는 앞서 말한 대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러시아는 알 아사드의 구원자인 동시에 조정자 역할까지 하게 됐습니다. 시리아의 명실상부한 큰 형님이 된 러시아를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는 테이블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마주앉아 국제 문제를 논의하는 파트너가 됐습니다. 시리아 평화회담을 마련하는 과정, 특히 정부측과 반군의 휴전 합의도 러시아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러시아는 시라아 내전 개입으로 통해 중동에서 해결사로서 위상을 재건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지속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만 두고 보면 미국을 능가하는 역학적 위치에 차지했다는 평가까지 받습니다. 러시아의 폭격을 발판 삼아 시리아는 수많은 반군 지역을 탈환했고 또 보급선을 차단해버렸습니다.이 상태에서 정부와 반군간 휴전이 성사됐습니다. 시리아 평화회담이 논의되고 휴전이 지속되는 한 시리아 정부가 유리한 고지에 선 상태는 계속 유지되는 겁니다. 결국 칼자루는 러시아가 쥐게 된 셈입니다. 이런 위상 변화는 미국과 서방이 알 아사드 정권의 축출 요구를 포기하라는 러시아의 압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형국을 만들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아사드를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친러시아 성향의 인사를 그 자리에 앉힐 수도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미국과 서방이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대가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제재 해제라면 아마도 기꺼이 아사드의 자리를 내주지 않을까요?


미국은 지난해 9월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전격적인 군사작전을 단행할 당시 아프가니스탄 침략에 이어 새로운 수렁에 빠져드는 전조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과는 미국의 예상과 반대가 됐습니다. 러시아는 생각보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며 시리아에서 군사적.정치적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 격퇴를 위해 시리아에 남아야 합니다. 미국은 시원하게 치고 착실히 과실을 챙겨 미련 없이 발을 빼는 러시아를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을까요? 더구나 러시아는 원유생산 문제를 놓고 사우디와 머리를 맞대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란과 핵 협상 타결을 두고 멀어진 사우디와 관계를 놓고 고심하는 미국으로선 더 속이 타는 상황입니다.
     

정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