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펑이 뜨면 사드가 쏜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사드가 단순히 방어용이 아니라
미국 항모전단의 자국 접근을 거침없게 만드는 공격무기가 된다.
지난 3월 2일 북한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유엔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중국은 제재안과는 다른 내용의 주장을 폈다. 중국은 여기서도 미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반대한다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리우 지에이 중국 주유엔대사는 “사드의 한국 배치는 중국과 역내 다른 국가들의 전략적 안보 이해를 훼손하고 한반도의 평화유지, 안보, 그리고 안정의 목표에 저해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중국은 대북 제재안을 도출하는 자리에서까지 사드의 한국 배치 반대를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반대는 지난 1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훨씬 이전부터 강력하게 전개되어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국이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경우 주권국가로서 한국이 거부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어 2015년 2월 한·중 국방장관회담에서도 중국 국방부장인 창완취안은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우려를 다시 제기했다.
사드 문제로 한중관계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그러나 중국의 사드 반대는 한·미 간에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가 공식화되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2월 16일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운운하며 한국을 미·중 간 무력 대결의 ‘바둑판’으로 묘사함으로써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경고했다. 물리적 충돌로의 비화 가능성도 언급했다. 특히 중국군 기관지인 ‘해방군보’는 중국 공군은 한 시간 내에 한국의 사드기지를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는 급기야 서울에서도 나타났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는 2월 23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사드를 한국에 배치할 경우 “한·중 관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
이런 행태는 중국이 향후 언제라도 사드 한국 배치가 결정될 경우 상당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막겠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에는 매우 높은 ‘전략적 가치’를 가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안에 동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사드 배치 저지를 위해 미국에 대북 제재안을 양보했다는 해석이다.
그럼 중국은 미국과 한국이 수차 ‘순수한 방어체제’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사드의 한국 배치를 왜 강경히 반대하는가? 무엇이 중국으로 하여금 사드의 한국 배치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인가?
최근 한국 언론들은 사드의 한국 배치와 관련해 X-밴드라고 불리는 사드의 AN/TPY-2 레이더 기능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X-밴드 레이더가 중국을 속속들이 탐지할 경우 중국의 군사력 배치와 활동이 미국에 파악당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X-밴드가 600㎞에서 900㎞ 정도까지 탐지하는 종말모드로 배치되느냐, 또는 1800~2000㎞까지 탐지하는 전진모드로 배치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감시범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X-밴드의 모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가 X-밴드 레이더의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봤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중국을 감시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산 또는 군산 대신 중국과 거리가 먼 칠곡, 대구, 또는 원주 등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제기되었던 것이다.
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
그러나 중국은 한 번도 한국 어느 지역에 사드가 배치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원천적’으로 반대해온 것이다. 이는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가 X-밴드 레이더를 통한 탐지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안보 위협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X-밴드 레이더의 탐지 기능보다는 사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가 자국의 핵심 군사역량을 심각하게 약화시켜 양국 간 군사적 비대칭성을 심화시킨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미국의 ‘모든 영역 접근전략(all domain access strategy)’을 자국 안보에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한다. 1996년 미국 2개 항모의 대만해협 진입, 2001년 하이난섬 미국 정찰기 충돌사건, 2010년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미 항모의 서해 진입 시도 등 중국이 강경하게 대처한 모든 사례들은 미국의 접근전략과 관련된 것이다.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해올 경우 어떤 조건에서라도 중국에 접근해 군사적 압박을 가할 태세를 갖춘다는 게 ‘모든 영역 접근전략’의 핵심이다.
中 반접근·지역거부 전략 추진
제1·2열도라인 등 美 접근 저지…
韓 사드 배치시 반접근 역량 약화
미국은 중국 접근전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2010년 4개년 국방보고서(QDR)에서 공해전투 개념(AirSea Battle Concept)을 공식 도입했다. 공해전투 개념은 F-22와 같은 전투기와 B-2, B-52 등의 전략폭격기, 그리고 토마호크 등 다양한 미사일을 앞세운 공군력과 이지스함, 항공모함 등을 중심으로 하는 해군력의 결합을 통해 모든 영역에서 중국에 대한 접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은 ‘반접근(Anti-Access)·지역거부(Area-Denial)’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접근 거부를 국방의 핵심과제로 상정하고 이런 맥락에서 제1열도라인과 제2열도라인 등 미국 접근 저지선을 구축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공격용 핵잠수함과 내륙과 해안지역에 배치한 ‘둥펑’과 같은 중단거리 탄도탄 및 유도탄 등으로 미국 공해전투 개념의 핵심역량인 항공모함을 공격함으로써 반접근·지역거부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미국 항공모함의 접근을 저지할 수 있으면 미국의 대중국 군사 전략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드를 포함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둥펑’과 같이 미국의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 있는 탄도탄 등의 위치가 미국에 노출된다. 특히 미군이 유사시 이러한 탄도탄에 신속히 타격을 가할 경우 중국의 반접근 역량은 무력화될 수 있다. 즉 중국은 사드와 MD 때문에 미국의 접근을 저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반대로 하와이 넘어 미 태평양 연안에 중국군이 접근할 역량까지 손발이 묶이게 된다. 중국의 미사일이 미군에 손쉽게 요격될 경우 양국 간 군사적 비대칭성이 유지, 심화된다는 것이 중국의 시각이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밖에 처음 실전배치되는 한국의 사드가 단순히 방어용이 아니라 미국 항모전단의 자국 접근을 거침없이 만들어주는 일종의 공격무기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를 우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사드를 통해 중국의 대미 안보전략의 핵심인 반접근 역량이 약화되고 반대로 미국에 대한 위협수단은 무력화되어 안보 취약성이 증대되는 데 있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에 대한 미국의 접근전략을 약화시켜 안보 취약성에서 벗어날 때 미국과 동등한 관계에서 상생, 공존할 수 있는 이른바 ‘신형대국관계론’이 성립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중시하는 미국의 접근을 막는 또 다른 저지선의 역할을 해온 게 북한이다. 따라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중국에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드의 한국 배치는 중국에 북한이라는 또 다른 저지선이 붕괴되는 것도 의미한다. 특히 이로 인해 수도인 베이징의 안보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 공군 장군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중국 원조로 연명하는 북한이 중국 안보를 위협하는 사드 한국 배치의 동기를 제공했다’는 불만 어린 지적을 한 것에서 중국의 딜레마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의 선택의 폭이 크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 동의는 사드 한국 배치를 저지하거나 연기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만을 압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중국이 인정한 것이다. 즉 미국과의 직접 거래로 급한 불을 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칼집에 있는 칼, 사드
앞으로 중국은 유엔 대북 제재안 동의와 함께 북핵 문제를 ‘비핵화’와 ‘평화협정’ 간의 빅딜로 추진해가며 시간을 벌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압박과 회유도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드 배치와 대북 제재 문제로 가장 이득을 본 국가는 단연코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도출했고, 그 과정에서 외교라기보다는 예술과 같은 완벽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미국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사드 한국 배치 건을 통해 부상하는 잠재적 패권국이라는 중국을 통제했고, 갈등관계에 있던 한국과 일본을 묶어냈으며, 강력한 북한 제재안을 도출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미국은 이제 사드 배치를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미 태평양사령관은 “사드 배치는 한·미 간 협의사안이며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언급함으로써 ‘칼집에 있는 칼’처럼 사드 배치를 보다 전략적으로 다룰 것임을 보여줬다.
한국이 문제다. 사드 배치를 서두르던 미국이 속도를 늦추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가진 카드를 모두 보여준 결과가 되었다. 결국 미국과 중국 모두에 ‘배치’와 ‘저지’의 상반된 요구를 압박받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배치될 사드는 미국 텍사스 포트 블리스(Fort Bliss)에 있는 포대들 중 한 개 포대를 이동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무기를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동유럽 MD 배치 과정에서 미국이 직접 러시아와 협상을 전개했듯이 사드의 한국 배치에 관해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듯이 한국의 주권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은 사드 배치 문제를 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한반도 냉전을 근본적으로 완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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