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지난 24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바오둥(李保東)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밝힌 말이다.
여기서 ‘두 나라’는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한반도 정세’라는 말이 나와 언뜻 보기엔 한국과 중국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리바오둥이 언급한 ‘두 나라’는 중국과 미국을 가리킨다.
오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제4차 핵안보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란 이야기다.
이 회담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한다. 우리로선 자연스럽게 박근혜-시진핑 정상회담은 안 열리나 하는 궁금증이 든다. 리바오둥은 시진핑이 이번 회담 기간 다른 국가 정상들과도 양자회담을 열어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리바오둥의 말을 감안하면 한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뒷맛이 어쩐지 영 개운치가 않다. 한국 또는 박근혜 대통령을 콕 집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에선 박근혜 정부, 중국에선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이후 한중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밀월을 구가해 오지 않았나. 심지어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중국경사론(中國傾斜論)까지 나오던 상황이 아니었는가.
이런 지난 3년여의 세월을 감안하면 현재 한중의 모습은 양국 관계의 소원함을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든다. 반면 놀랍게도 일본 언론에선 이번 핵안보 정상회의 기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 대통령을 만나 회담을 가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 당국자도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선 ‘가능성이 높다’ 하면서도 한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엔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중 관계의 현주소가 예전 같지만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한중이 한 목소리로 아베의 일본이 우경화 움직임을 보인다며 성토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바뀌고 말았다. 이런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건 물론 북한이다. 연초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켓 발사 실험으로 한중 관계를 시험대에 올렸다.
우리는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불구하고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던 중국에 실망이 컸고 중국은 한국의 사드 도입 움직임에 적지 않게 실망한 모양새다. 그리고 이 같은 서로에 대한 실망감이 아직은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는 중국이 과연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고 중국은 한국의 사드 도입을 막기 위해 한국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 등 백방으로 뛰어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사람은 오래 사귀어봐야 그 사람의 진정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고 한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초기의 밀월 기간을 지나 이제 까다로운 장애물에 부딪힌 상태다. 과연 이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 첫 발자국은 만남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워싱턴에서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눠야 할 것이다. 한중 정상의 우의가 북핵 문제로 인해 어그러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한중 관계가 나빠지면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칠 것은 북한과 일본 등이 아니겠는가. 반면 그 피해는 바로 한중 두 나라로 이어지는 것이고. 북한 핵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진 이 상황에서 마침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는 한중 정상이 세간의 의혹을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