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19세기 인도에서 인도인은 영국인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했지만 영국인은 인도의 사원에 갈 때도 구두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니 신발을 신는 것은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가름하는 행위와도 같은 것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신발로 자신의 권위를 한껏 높인 인물은 프랑스의 루이 14세다. ‘태양왕’으로 불릴 정도로 포부가 컸지만 키는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160cm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 공식 행차에 나설 때 그가 신던 특제 구두의 굽 높이가 무려 13cm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우리는 신발 선물에 조심스럽다. 신발을 받은 이가 그 신발을 신고 내게서 떠나간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군대 간 병사의 입으로부터 입대 전 사귀던 여자 친구가 떠나면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만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구두를 선물한 건 시진핑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인 시중쉰 전 부총리로부터 처음 받은 외국산 제품이 바로 체코의 제화업체인 ‘바타’로부터 구입한 신발이었다는 데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시진핑의 마음을 사기 위한 체코의 지극정성이 놀랍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챙겨야 할 점이 한두 가지 있지 않나 싶다. 첫 번째는 어떻게 해서든 시진핑의 마음을 얻어 체코의 경제 발전에 중국의 지원을 받으려는 체코 당국의 처절하기까지 한 노력이다.
시진핑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한 체코 당국자의 고민이 마치 눈에 환히 보이는 듯 하다. 그런 지극정성이 있다면 체코의 앞날이 밝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체코 의전팀과 시진핑 비서진과의 긴밀한 교류다. 선물 준비 등은 실무진의 몫인데 실무진끼리 이 정도 깊숙하게 의견을 나누며 교류할 수 있는 관계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꽌시(關係) 수준으로 봐야 한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중국에서, 또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중국에서 이 꽌시의 중요성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시진핑 집안은 매우 검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시진핑이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일이 있는데 누나가 신던 분홍 꽃신을 물려 받아 신고 나갔다가 당한 일이라 한다. 아버지 시중쉰은 손녀인 시진핑 딸에게도 냅킨 한 장을 반으로 잘라 쓰게 할 정도였다.
중국의 지난 정권에선 원자바오 총리가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지방 시찰을 다녔던 게 화제가 됐었다. 시진핑 시기 들어선 신발은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대명사로 쓰인다.
시진핑은 ‘신발이 발에 맞고 안 맞고는 신어봐야 안다’는 신발론을 내세운다. 정치체제와 관련해 그것이 그 나라에 맞고 안 맞고는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간섭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즉 중국의 공산당 일당제에 대해 서방 각국이 다당제의 필요성 운운하며 중국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나저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신발 회사의 신발을 세 켤레나 선물 받은 시진핑이 체코에 어떤 선물을 안길 지 궁금하다.
한편으론 우리 시각으로 4월 1일로 예정된 박근혜-시진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과연 어떤 선물을 주고 받을까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참고로 박 대통령은 이제까지 칠보 바둑세트와 은다기, 천삼 세트 등을 시진핑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아마도 양국 정상 모두에게 가장 큰 선물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