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신문은 한글판에 띄어쓰기를 적용한 덕분에 금세 대중과 친숙해졌다. 처음엔 격일간이었으나 곧 일간으로 바뀌었다. 논설과 물가시세, 외국 정세, 광고 등을 싣고 영문판을 찍어 외교사절들에게도 배포했다. 그러면서 ‘처마의 제비가 제비집이 불붙은 것도 모른 채 즐겁게 지저귀는 것 같다’(조선책략)는 비웃음을 사던 조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문의 역할은 변함없다.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변해도 신문 본연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 결의사항 등을 석판에 새겨 알리던 때부터 최고의 정보 전달 매체였다. 지금 달라진 것은 콘텐츠의 질과 양이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정보뿐만 아니라 현상의 이면을 분석하는 해설과 논평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심층취재와 기획 시리즈 등으로 사회 변화와 지식의 깊이, 사고의 흐름을 함께 조명하는 것도 큰 역할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문제가 전 국민의 이슈로 부상하면서 경제신문 독자가 급증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뛰어난 경영자와 성공한 투자자,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은 아침마다 최소 두 개 이상의 신문을 읽는다.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사람들도 그렇다. 포브스가 400명의 억만장자를 분석한 결과 그들의 첫 직업이 대부분 신문배달부였고 아이디어의 단초를 얻은 매체도 신문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무료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파편화된 정보만으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뉴스의 경중을 종합적으로 편집한 종이신문의 에디톨로지(지식 편집)가 그래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신문활용교육(NIE)을 통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가려내고 분석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의 싹을 틔우는 평생교육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 국가의 지력이 성장하고 성숙한 사고체계도 확립된다.
자극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나 편파적인 선동 문구에 휘둘리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운운하며 신문 안 보는 걸 당연한 듯 떠드는 사람조차 있으니 정치를 비롯해 온 나라가 이다지도 ‘무식’해진다. 물론 신문사들의 책임도 크다.
고두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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