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웬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할머니와 힙합가수 둘 다 진지했다. 어느 누구도 예능이라는 방패막 뒤에 숨어 “(어린)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고 꼰대질하거나 “(늙은) 니들이 힙합을 알아?”라고 디스하지 않았다. 또 적당히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도전하고 그런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과정뿐 아니라 결과도 훌륭했다. 민망한 헛웃음을 기대했다가 기분 좋은 일격을 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방송이 끝난 후 악플 일색이던 포털과 SNS에 “할미넴(‘할머니’와 미국의 유명 힙합가수 ‘에미넴’을 결합한 말), 멋있다”거나 “저렇게 늙고 싶다”는 반응이 이어진 걸 보면 나처럼 느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도전뿐 아니라 같이 출연한 힙합가수에게도 냉소적이었던 젊은 힙합 팬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이를 벼슬처럼 앞세우는 대신 나이와 무관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또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할머니들의 열린 자세였을 것이다. 힙합 특유의 스웨그(자아도취)는 유지하면서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힙합가수 역시 한몫했을 테고.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개봉해 "세대 간 화합 영화”라는 평을 받은 ‘인턴’도 그랬다. 간부로 퇴직하고 인턴으로 새 인생을 출발한 늙은 인턴 벤이 나이를 앞세우지 않고 경륜으로 젊은 CEO 줄스와 호흡을 맞추는 걸 보면서 많은 젊은이가 “저런 어른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땐 다들 영화 속 얘기일 뿐이라고 했지만, 할미넴의 도전을 보니 우리에게도 이런 어른이 없으리란 법이 없겠다.
할머니가 랩을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 갈등의 해법을 어렴풋이나마 봤다. 힙합과 할머니. 대척점에 선 이 조합이 이토록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안혜리 뉴디지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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