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사월의 첫날 박목월 시인의 ‘청노루’를 생각한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낡은 기와집//산(山)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청(靑)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은 나무의 속잎이 피어나는 봄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햇볕이 내려앉는 낡은 기와집 곁에 느릅나무의 속잎이 가지마다 열두 굽이처럼 피어가는 봄의 평온은 청노루의 눈에 구름이 내려앉는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를 담고 있다.
청노루의 눈에 머무는 맑은 구름의 정갈한 순간이 이 봄의 축복이다. 봄이면 피어나는 수많은 꽃은 이 축복의 손길로 위로와 평안, 때로는 화사한 몽환의 꿈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새 생명의 약동을 바라보게 한다. 이런 봄꽃은 스스로를 둘러보게 하기도 한다. 세상일에 매달려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의 목표만 바라보고 하루를 견디어 내야 하는 이에게는 하루의 봄날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의 의미만 있을 뿐, 화단에 피어난 조그마한 봄꽃의 자태가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일이다. 내가 아는 이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그와는 친한 사이라 도움을 주기보다는 인사차 그가 출마한 도시로 찾아갔다. 그의 선거구에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동네가 많았다. 작은 가게를 빌려 선거사무소를 차려놓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를 찾아 나섰다. 한 친구가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그가 있다는 바닷가로 갔다. 마을 앞 바닷가에서 아낙네들이 한 줄로 앉아 미역을 펴서 말리고 있었다. 그가 미역 말리는 아낙의 손을 잡고 “○○○입니다”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는 멀리서 그를 지켜보았다. 한참 후 우리를 보고 그가 다가왔다.
그는 다시 다른 마을로 떠나야 했기에 우리도 따라갔다. 이번에는 배꽃이 언덕 가득 핀 동네였다. 그는 과수원 담장을 끼고 있는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 왔습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하늘로 벌리고 걸어갔다. 우리는 멀리 길가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파란 하늘 아래 배꽃은 구름처럼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 흘러가는 듯했다. 그가 소리 지르며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배꽃 구름을 흰 표 뭉치로 보고 달려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시내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배꽃이 흰 표로 보이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배꽃이 구름으로 보이는 나는 역시 선거 마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호 시인은 ‘찔레꽃 피다’는 시에서 엉뚱하게도 가시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 놓고 무심코 웃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뒤돌아보니 찔레꽃이 만발해서 가시울타리를 덮고 있다 밉지도 않으면서 상대의 가슴에 가시를 찔러 피멍을 들게 해놓은 나도 나이지만, 어쩌자고 찔레꽃은 무더기로 피어나 나 또한 피멍 든 적이 있음을 회상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말 한마디에 찔려서 마음속에 붉은 상처를 지니지 않은 사람 없을 터이지만, 밉지도 예쁘지도 않은, 뾰족한 가시를 두른 찔레꽃 피는 계절이면 한 짓을 짐짓 뒤돌아보아 후회하게 되고 후회하다 뒤돌아보면 찔레꽃은 여전히 피어서 가슴을 찔러댄다. 올해도 찔레꽃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누구의 가슴에 악의도 없이 피멍이 들게 가시로 찌르고 또 자신도 가시에 찔려 피멍이 들었던 기억을, 가시가 있는 찔레꽃은 피어오르게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대학 4학년이 된 봄날 친구가 여학생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어리석게도 그의 감언에 속은 것은 1학년 때부터였지만, 4학년이 되고 나니 졸업식에 꽃다발 하나 가져올 사람이 없을까 하는 조바심에 그의 말에 넘어갔다.
수많은 찻값을 내고 저녁밥을 수없이 사고서야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벚꽃이 한창이어서 창경궁을 밤에도 열 때였다. 그는 금요일 일곱 시 식물원에서 안쪽으로 열네 번째 벚나무 아래 기다리고 있으면 여학생이 올 것이라고 했다.
금요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학교에 갔더니 친구는 약속을 꼭 지키라고 했다. 다섯 시쯤 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래도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창경궁 앞에서 표를 사서 들어갔다. 일곱 시가 되어 활짝 꽃 핀 벚나무 아래 섰다. 비는 철철 내렸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온통 다 젖었다. 그런데 여학생은 오지 않았다. 아홉 시가 다 되어갈 때까지 내 어깨에는 젖은 꽃잎이 하얗게 매달렸다. 발 앞 보도 위로 흐르는 빗물에 꽃잎이 하얀 종이배처럼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친구가 속인 것이 분해서가 아니라, 벚꽃 아래 비를 맞고 서 있는 내가 서러워서였다. 내 어깨에 붙어 있는 젖은 꽃잎이 마치 나 자신인 듯 느껴졌다. 이 황당한 기억은 벚꽃에 매달려 있다.
사월, 전숙 시인의 ‘아버지의 손’을 읽었다.
‘회초리를 들어 내 장딴지를 후려치던/그 강단진 패기는 어디쯤에서 말라버렸을까/ 한 장 한 장 생을 굽듯이 아슬하게 구워낸/ 내 대학등록금을 은행창구에 들이밀 때/아버지의 손은 사바나로 변하고 있었으리라’.
그렇다,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푸른 초원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하얗게 말라붙은 사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봄은 꽃이 핀다는 개화의 신호이지만, 꽃이 지는 낙화의 그림자도 지니고 있다. 봄의 의미를 느끼고 상상하는 순간, 삶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기억의 창고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꽃이 지닌 향기에 물들게 하고, 온 세상에 향기가 퍼지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가게 할 것이다.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수대] '할미넴' (0) | 2016.04.06 |
---|---|
[워킹맘 다이어리] 사랑해서 미안합니다 (0) | 2016.04.04 |
[태평로] 敵은 밖에 있다 (0) | 2016.04.01 |
의외로 남성은 여성 얼굴의 '이것'에 끌린다 (0) | 2016.03.31 |
[삶의 향기] 봄날의 미풍은 오색 무지개 (0) | 2016.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