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학교 담임 선생님 첫 상담 자리였다. 선생님은 아이가 다른 건 괜찮은데 무언가 머뭇거림이 보인다고, 나이답지 않게 조숙한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성장 과정에서의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백일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성장 과정에 대해 설명하자 돌아온 질문이 위의 것이었다.
마치 인공지능(AI)인 양 내 입에선 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지속 가능한 육아를 위해서요. 친정엄마가 함께 살며 봐주시긴 하지만 혼자 보기엔 너무 힘드시니까요.” 하지만 선생님 역시 한 템포 쉬고 던진 두 번째 질문, ‘그 정도로 일을 사랑하셨나요?’에 대한 답은 버그라도 발생한 듯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은 후에야 나왔다. “일을 사랑하기도 했고… 엄마도 딸이 일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셨죠.”
마치 장성한 이후 한두 번 했을까 말까 한 “엄마 사랑해”를 입 밖에 꺼낸 것처럼 어색하고 낯설었다. “엄마 사랑해”는 쑥스러워 하기 힘들었다면 “일을 사랑해”는 애 엄마 입에선 나오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임을 ‘엄마 핑계’까지 대가며 어렵게 답하는 자신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그 뒤의 상담은 입으로 했는지 발로 했는지 모르는 상태로 흘러갔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에 턱 얹힌 느낌으로 교실에서 돌아 나왔다. 상담 내용을 간단히 전해 들은, 아이에게 유전자 절반을 물려준 남편은 “원래 성격이 그래. 기관에 보냈다고 그렇게 된 건 아니야. 약간 강화됐을 순 있겠지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 날 새벽, 종이 접기로 만든 해적 선원들의 종이눈깔이 풍랑에 휩쓸리며 사라지는 만화 같은 악몽을 꾸다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이 칼럼의 첫 단락을 쓰곤 8년간 속으로만 삼켜왔던 눈물을 흘렸다. 어린이집에서 홀로 누워 젖병을 빨던 아이의 눈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목격하곤 심장이 송곳에 찔린 듯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품을 해도 눈물은 나오는 거야’라며 그런 장면들은 애써 지우고 살아왔는데. 아마 아이의 힘듦도 외면하며 지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우리 아이도 소중하지만 우리 엄마도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일을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고선 세상의 아빠들에겐 단 한번도 던져지지 않을 질문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아도 일해야 사는 이들,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청년들 앞에서 사치를 떨어 미안하지만.
이경희 키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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