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2016.04.07 13:42
작년 11월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 민주 선거에서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집권 군부에 압승을 거두자 외신은 이를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아웅산 수지가 물꼬를 튼 군부 타파 혁명은 지난달 그의 대리인이자 최측근인 틴 초가 대통령직에 올라 54년 만에 문민정부를 출범하면서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영미 유명 사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책 '혁명의 탄생'은 혁명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과거의 악습을 끊어냈지만,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과 정책을 갖추는 데 실패하면 폭력과 혼란, 수많은 사람이 흘린 피가 그 빈자리를 채우곤 한다. 역사는 그런 사례를 수없이 열거한다.
1789년 프랑스 민중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보냈을 때 '왕정(王政) 타파'라는 혁명의 구호는 성취된 듯 보였다. 하지만 무능한 왕을 몰아내는 데 급급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까지는 미처 그려보지 못했던 프랑스가 이후 겪은 공포정치의 결과는 참혹했다. 혁명의 진정한 목적이었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가 실현된 것은 약 100년이나 되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폭정에 반발한 민중이 일으킨 혁명이 폭군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또 다른 독재자를 위한 길을 터주고 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명나라 말기 정부가 백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조세 부담을 늘리자 이자성은 20만 농민 반란군을 모아 봉기했다. 혁명군은 자금성을 함락하고 황실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빼앗은 황제의 자리는 혼란을 틈타 명나라 수도를 공격한 청나라에 넘겼고 이자성은 목숨마저 잃었다.
1917년 노동자가 주축이 된 러시아혁명 역시 로마노프 왕가를 무너뜨렸지만, 레닌 사후 후계자 쟁탈전에 승리해 권력을 잡은 스탈린 정권이 들어서면서 혁명의 수혜자가 돼야 했을 국민은 호랑이를 몰아내고 사자를 섬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굳이 먼 과거나 남의 이야기에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도 민주화운동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웅산 수지가 이제까지 일궈낸 결실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혁명은 그가 민주화의 상징으로 군림했을 때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딘 정치인으로서 평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게다가 미얀마엔 부정부패 척결, 소수민족 간 화합, 경제성장 등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미얀마의 혁명을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우리 역시 과거 비슷한 일을 겪었고, 장차 북한에 레짐 체인지가 실현될 경우 북한 동포들이 직면하게 될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얀마라는 먼 이국 땅의 지도자, 아웅산 수지의 혁명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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