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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식의 세상읽기] 너 자신을 알라

바람아님 2016. 4. 18. 16:31

(출처-조선일보 2016.04.16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단단한 소나무로 만든 거북선… 외국선 '철갑'이라며 높이 평가
1929년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세계 첫 철갑선으로 등재
유네스코 유산 신청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를 잘 알아야 밖에도 정확하게 알려져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던 '한국의 서원'이 예비심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신청을 철회키로 했다. 9곳의 서원은 소수(경북 영주), 도산·병산(경북 안동), 도동(대구 달성), 
무성(전북 정읍), 돈암(충남 논산), 남계(경남 함양), 옥산(경북 경주), 필암(전남 장성) 등이다.

소수서원은 1541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세웠다. 
도산·병산서원은 각각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을,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 무성서원은 유학의 
비조(鼻祖)로 불리는 신라 말 고운 최치원,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을 모신다.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모시는 곳이다. 
이 서원들을 방문한 린 디 스테파노 홍콩대 교수는 "아홉 곳의 서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고 
서원 건축물뿐 아니라 주변 자연경관이 함께 관리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철회 방침만 밝혔을 뿐 9개 서원을 묶은 이유는 함구했다. 
동방 5현, 혹은 동국 18현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묶었다면 그나마 궁색한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9개 서원은 
두 기준과도 맞지 않고 학통(學統)도 다르다. 
이래서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하듯 골랐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 서원의 세계 유산 등재가 후손들의 부실한 준비로 좌절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틀 전 전해진 거북선(龜船) 뉴스를 
떠올렸다. 미국해군연구소(USNI)가 2만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 해군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함선 7척' 
가운데 거북선이 포함됐다는 것이었다.

7척의 함선은 항공모함, 아이오와급 잠수함, 첫 원자력 추진 잠수함 '노틸러스', 범선 '컨스티튜션' 등 미국 것이 4개이고 
영국 전함 드레드노트와 독일 경(輕)순양함 '엠덴'이다. 
거북선은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00년대 건조된 '컨스티튜션'보다도 400여년 앞선다.

우리 사서(史書)에 거북선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413년 '태종실록'이며 임진왜란 때 중국에 보낸 외교 문서를 
모아 둔 '사대문궤'에 따르면 전쟁 중 활약한 거북선은 모두 5척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임진왜란 이후 사라진 것처럼 알고 있었던 거북선이 조선 말까지 존재했다는 것이다.

1746년 편찬된 '속대전'에 거북선 보유량이 14척, 1770년 '동국문헌비고'에는 40척으로 늘어났다. 
1808년 '만기요람'에 30척, 1817년 편찬된 수군 함선 목록인 '선안'에는 18척으로 기록돼 있다. 
한 전문가는 "거북선은 일제가 조선 수군을 해체한 1895년까지 있었다"고 했다.

그런 거북선을 세계에 알린 것은 외국인들이다. 
1882년 미국 선교사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가 펴낸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서 '금속으로 표면을 감싼(covered with metal)' 
조선 군함을 알렸고 같은 선교사 호머 헐버트도 1899년 '철판으로 감싼 거북배'의 존재를 월간지에 게재했다.

헐버트는 거북선을 '철갑선(Ironclad)'이라며 
'한국은 철갑선과 금속 활판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발명한 국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이는 '기분 좋은 오보(誤報)'다. 
거북선은 단단한 소나무로 장갑(裝甲)을 하고 위에 못을 박았을 뿐 철갑(鐵甲)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거북선은 1929년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4판에 '세계 첫 철갑선 군함'  으로 공인(?)되기에 이르렀다.

서원과 거북선 뉴스를 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모르고, 그러다 보니 막상 밖으로 알려질 때도 부정확하게 전해진다는 
생각과 함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지(無知)한 자신을 처절하게 반성해야 뭔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단 역사뿐이겠는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을 무시하다 큰코다친 정치권에도 유효한 경구(警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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