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출신답게 ‘장사’가 되는지 여부를 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는 주장이다. 더 이상의 대외 개입을 줄이고 국내로 눈을 돌리겠다는 점에서 ‘신 고립주의 외교’란 평가가 나온다.
그는 이날 한국이란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이 안보와 관련해 적정한 몫의 방위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 않다”며 상황에 따라선 주한미군 철수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유세 등에서 한국·일본·사우디아라비아 등 우방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했다. 하지만 이날 일부러 워싱턴 DC까지 가 자신의 외교·안보 구상을 밝히는 첫 공식 연설이었다는 점에서 이전과 무게가 다르다.
그는 이날 “우리는 유럽·아시아의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비행기와 미사일·선박·장비 등에 수조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며 “우리가 지켜주는 국가들은 반드시 방위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들 나라가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준비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또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과 아시아 동맹들과의 각각의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할 것”이라면서 “이 정상회담에서 금융적 책무 재균형(방위비 재조정)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전략’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구상은 집권 후 곧바로 유럽·아시아 동맹들과 방위비 재협상을 벌이고, 만약 적정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는 동맹에 대해서는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둬들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트럼프는 “동맹들이 우리 미국을 ‘약하고 용서하는 국가’로만 볼 뿐 우리와 맺은 협정을 존중하는 의무감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며 “일례로 나토 회원국 28개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4개국만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 정권은 우방은 미워하고 적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며 오바마 정권의 대북 전략 등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비전·목적·방향·전략이 없다”며 ‘4무(無) 정책’이란 평가도 내놓았다.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핵 능력을 확장하는데도 무기력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면서 “심지어 북한을 제어하도록 중국에 대한 우리의 경제·무역 영향력을 사용하지는 않은 채 오히려 중국이 미국인의 일자리와 재산을 공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이 통제 불능의 북한을 제어하도록 중국에 우리의 경제력을 행사하는 등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가 내놓은 외교·안보 정책 방향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이상한 세계관’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경험이 부동산 거래밖에 없는 사람에게 모든 것은 임대차 계약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그의 외교정책 발언을 듣다 보면 마치 그가 출연한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와 같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미국의 보호와 교역, 우정의 대가로 더 많은 돈과 군대,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비난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이날 한국·일본의 핵무장 용인론을 외교정책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향후 외교정책 수립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집착하기 보다는 여론의 동향을 보면서 궤도 수정을 해 나가는 ‘현실적 선택’을 할 것이란 지적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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