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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전통이 재미있으면 하지 말래도 한다

바람아님 2016. 5. 10. 00:16
[중앙일보] 입력 2016.05.0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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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요즘 서울 광화문과 삼청동 일대에 나가보면 색색의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사진). 지난해에는 두세 명 그룹의 10~2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에는 남녀 커플이나 가족도 종종 눈에 띈다. 이렇게 한복 입은 사람들을 보면 고궁의 담장도 살아 숨 쉬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명절 아닌 날에 길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결혼식의 부인 하객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사진 기반 소셜미디어의 인기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로 검색해 보니 지난 연휴를 기점으로 #한복이 약 39만6000건, #한복스타그램이 약 4만2000건, #한복체험이 약 2만 건에 이른다.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그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된 것이다. 그와 함께 한복대여 업체도 부쩍 늘었다.

지난달, 내가 소속된 영어신문에 관련 기사를 싣기 위해 후배 기자에게 취재를 하도록 했다. 한복 체험자들에게 “왜” 하는지 꼭 물어보라고 했다. 후배는 취재를 마치고 말했다. “SNS에 다른 사람들이 한복체험 사진 올린 걸 보니 예쁘고 재미있어 보여서라는 대답이 많았어요. ‘재미’가 압도적 이유였어요.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기 위해’라는 대답은 의외로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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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상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염려하며 한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반짝 유행으로 그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한 한복체험이기에 한복 문화 확산에서 강력하게 효과적이며 지속적일 수 있다. 그 재미가 한복 탐구로 이어질 일이 과연 없을까? 외국인이 거리의 한복 남녀를 보며 한국 문화에 더 흥미를 가질 일이 과연 없을까?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1938년 저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서 놀이야말로 인류 문화의 기원이고 원동력이며 그 놀이의 본질은 재미라고 했다. 90년대부터 “한복의 일상화로 민족의 혼과 정신을 찾고자” 정부가 지정한 ‘한복 입는 날’은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2011년 시작된 민간단체 ‘한복놀이단’의 플래시몹과 2012년 시작된 전주 한옥마을의 ‘한복데이’ 축제는 점차 호응을 받았고, 마침내 사진 기반 SNS를 타고 서울 중심부에 한복 남녀의 폭발적인 출현을 낳았다.

한복체험 인기를 심도 있는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 물론 정부와 전문가의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가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