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미국-베트남 '적에서 동반자로' 중국 포위망 한층 더

바람아님 2016. 5. 25. 00:03
한겨레 2016.05.23. 20:06

오바마 베트남 방문

살상무기 수출입 전면 허용
종전 41년 관계 정상화 상징

중 남중국해 진출 가속에
영유권 분쟁 겪은 베트남
아시아서 보폭 늘리려는 미국
전략적 이해 맞아떨어져

중동에 잡혀 있던 미국
아시아 회귀 계기 삼을 듯

“이건 역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벤 로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즈음해 양국 관계를 언급한 말이다.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23일 베트남에 대한 살상무기 수출금지 전면 해제를 발표해, 양국은 과거에는 예측할 수 없었던 관계로 접어들게 됐다. 양국은 냉전을 상징하던 전쟁의 ‘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중국을 견제하는 ‘동반자’ 관계 구축에 나섰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표방한 아시아 중시 정책이 이제 구호가 아니라 실효적인 정책으로 작동하게 됐음을 뜻한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정세도 더 격화하게 됐다. 남중국해 주변국들을 포섭해 중국을 봉쇄·포위하려는 미국, 그 포위 봉쇄망을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은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이게 됐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베트남을 매개로 전개됐다. 처음 미국은 베트남을 소련·중국 사회주의 진영의 팽창을 막는 보루로 보고, 베트남전에 깊숙히 발을 담갔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중-소 분쟁의 격화를 보면서, 소련의 고립을 위해 70년대 초반 이후 중국과의 화해를 추진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닉슨독트린으로 구체화됐다. 베트남에서 철군 및 종전, 그리고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감축하며 미국 방위선을 후퇴시켰다. 이는 중국을 배려한 조처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은 달라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상징이었다. 그해 미국을 방문해 공식수교를 한 당시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은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베트남 응징 의사를 밝혔고, 카터는 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당시 소련은 베트남의 깜라인 항을 조차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베트남은 인근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중국은 동남아에서 소련과 그 대리인인 베트남의 영향력 확대를 좌시할 수 없었고, 미국은 이를 인정한 것이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와중에서 1989년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중국 방문은 아시아의 정세를 다시 흔들었다. 소련과 중국이 화해 모드로 들어서자, 미국은 베트남과의 화해를 추진했다. 베트남 연안의 대륙붕 개발 등에 미국이 관심을 보였고, 양국은 결국 1995년 정식 수교했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관계에 역사적 이정표가 됐다.


이 때를 즈음해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난사군도) 등의 영유권 분쟁이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사이에서 부상했다. 이 분쟁에 개입하지 않던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아시아 중시 정책을 표방하고,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천명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북한과 함께 중국의 최대 맹방인 미얀마와의 수교를 추진하는 한편 2011년에는 미 해군 함정이 깜라인항을 방문했다.


이를 기점으로 베트남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주축으로 부상했다. 특히, 2014년 남중국해의 베트남 연안에서 중국의 석유시추 사건은 미국-중국-베트남 관계의 새로운 전기였다. 응우엔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중국 최고지도부에 항의 전화를 했으나, 통화도 하지 못했다. 이 때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예약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그 해 10월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무기 금수조처를 일부 해제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에 대한 무기금수 조처 전면 해제는 상징적이다. 양국관계가 군사적 협력 관계로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동남아에서 중국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베트남을 자기 쪽으로 든든하게 포섭했음도 뜻한다. 미국의 무기 금수조처 해제가 베트남에게 당장 미국 무기 구매 증대로 이어지기보다는 러시아 의존 일변도의 무기 구입에서 선택지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1기 임기에서 아시아 중시 정책을 표방했으나, 그동안 중동에 발목이 잡히며 아시아로 실질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베트남과의 관계를 격상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실질적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베트남전에서 철수하며 아시아에서 한 발을 뺐던 미국이 베트남을 통해 아시아에 다시 두 발을 딛게 됐다.


정의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