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뉴스 속의 한국사] 460년 전 '육아 할배'… 손자 키우며 가문 세우길 바랐죠

바람아님 2016. 5. 30. 08:46

(출처-조선일보 2016.05.30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이문건의 '양아록']

조선시대 학자 '이문건'
관직에서 물러나 성주로 유배… 손자 키우는 것 삶의 낙으로 삼아
걸음마 익힌 시기·치료 방법 등 16년간 성장 과정 일기에 기록

최근 어린 손주를 봐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어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은퇴한 조부모 세대가 손주를 돌보는 것이 점차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손주를 잘 돌보기 위해서 아동 심리 보육서를 찾아 읽거나, 최신 입시 정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인터넷 교육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조부모들도 있다고 해요.

16세기 조선시대에도 한 할아버지가 무려 16년 동안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이문건이라는 학자가 유배 생활 중 어렵게 본 손자를 키우며 쓴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아이를 키우면서 쓴 기록)'이에요. 

당시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지요?

을사사화로 유배 간 학자가 남겨

1551년 경북 성주 이문건의 집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58세의 선비 이문건은 자신의 손자가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시를 짓고, 

아이의 사주 등을 고려하여 이름을 두 번이나 고쳐 지었답니다. 그렇게 지어진 아이의 이름은 숙길(淑吉)이었어요. 

아이의 운명이 앞으로 계속 길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지은 이름이었죠.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혁

이문건은 을사사화(1545) 이후 오랫동안 귀양을 살았던 선비였어요. 

이문건이 한창 벼슬아치 생활을 할 때 나라를 다스린 중종 임금은 기존 관리들의 세력을 견제하겠다는 명목으로 

왕비의 친지 세력을 등용했었답니다. 

그렇게 등용된 외척은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과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 등이었죠. 

윤임과 윤원형은 각자 자신이 모시는 중전이 낳은 왕자를 중종의 후계자로 삼게 하려 다퉜어요. 

조선 관리들도 윤임을 따르는 대윤 세력과 윤원형을 따르는 소윤 세력으로 나뉘고 말았죠. 

이문건은 대윤 세력에 속했어요.

1544년 중종이 승하한 뒤, 1545년 1월 1일 대윤 세력이 지지하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즉위했어요. 

그런데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수개월 만에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 결과 소윤 세력이 지지하는 인종의 동생, 명종이 왕위에 올랐지요. 

명종이 즉위하자 1545년 8월부터 을사사화가 시작돼요. 

소윤 신하들이 대윤 신하들을 유배 보내고, 심한 경우 역모죄를 물어 죽게 한 사건이지요. 

대윤파였던 이문건도 이때 관직에서 물러나 경북 성주로 유배를 간 거였어요.

이문건의 자식들은 대부분 천연두 등의 병을 얻어 일찍 죽었어요. 

유일하게 살아남아 어른이 된 아들은 둘째 아들뿐이었지요. 

그러던 중 둘째 아들 부부가 어렵게 손자를 낳으니 이문건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손자가 건강하고 훌륭하게 잘 자라서 가문을 다시 번성하게 하길 바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이문건은 손자를 자신이 직접 교육시키기로 하였어요.

'아들이 자식을 얻어 가풍(家風·한 집안에 대대로 이어 오는 풍습)이 이어졌다. 

조상들의 영혼이 지하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뒷일들이 모두 잘될 것 같다. 

오늘 저 어린 손자를 기쁘게 바라보며, 노년의 내가 아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겠다. 

귀양살이 쓸쓸하던 터에 좋은 일이 펼쳐져 나 혼자 술을 따르며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문건의 육아일기는 손자가 16세가 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답니다. 

조선시대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맡아 함께 생활하고 부모를 대신하여 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대요. 

부모 대신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교육을 시키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이죠. 

이것을 조부모가 세대를 건너뛰어 손주 교육을 시킨다는 뜻으로 격대교육(隔代敎育)이라고 불러요.

◇할아버지가 16년 동안 쓴 육아일기


이문건은 직접 손자 교육에 힘썼을 뿐 아니라 손자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손자가 자라는 과정을 육아일기 '양아록'으로 

기록하였어요. 나중에 손자가 커서 이 책을 읽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죠. 

'양아록'에는 손자가 돌잔치 때 상에 진열해놓은 물건 중에 무엇을 잡았는지, 언제 이가 나기 시작했으며 걸음마를 익혔는지, 

아플 때는 어떻게 치료하였는지 손자의 성장·발달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문건은 손자가 10세 때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꾸짖었대요. 

할아버지는 손자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어요. 

이문건은 이렇게 때때로 손자를 때린 뒤 육아일기에 마음이 아팠다고 적었어요. 

당시에는 사랑의 매를 들어 훈육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양아록'은 오늘날 조선 중기 양반 집안의 아동 교육과 육아 생활 등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요. 

그리고 손자 이숙길은 (후에 이원배로 개명) 할아버지의 염원대로 

훌륭한 어른이 돼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고 전해진답니다.


관련 기사 :


손주 돌봄 십계명(조선일보 2013.07.20)

'유교의 나라' 조선에도 직접 손자 키운 '선비 하빠' 있었다/

最古 육아일기 '양아록' 쓴 사대부 묵재 이문건(조선일보 2013.10.19)

할아버지들 "기저귀 어떻게 가나요?"(조선일보 2013.10.19)  

'황혼육아族' 250만, 할빠가 아동용품 큰손됐다(조선일보 2014.02.24)

떠맡은 손주? 즐기며 키우는 '할류族'도 많습니다(조선일보 2014.05.14)

8년간 할아버지가 쓴 알림장 日記(조선일보 2014.07.30)

이계진의 할아버지 육아일기(조선일보 2014.08.07)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김찬웅 지음)=

기묘사화(1519)·을사사화(1545)로 23년 유배생활을 했던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養兒錄).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병치레하고 배우고 

부모와 갈등을 겪었는지 조선의 시대상을 읽어준다. 

글항아리,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