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花鬪

바람아님 2016. 6. 7. 23:50
문화일보 2016.06.07. 14:00

황성규 논설위원

‘정월 송악에 백학이 울고 이월 매조에 꾀꼬리 운다/ 삼월 사쿠라 북 치는 소리 천지 백파에 다 날아든다/사월 흑싸리 못 믿어서 오월 난초가 만발했네…’. 전북 고창 지방의 ‘화투(花鬪)타령’이다. 화투짝에는 월별로 솔, 매조(梅鳥), 벚꽃, 난초 등 여러 동식물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일 년 열두 달에 열 끗짜리와 다섯 끗짜리 그리고 두 장의 홑껍데기가 있으니 모두 마흔여덟 장이 한 세트다. 화투로 심심풀이 운세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트럼프를 서양화라고 하는 데 빗대어 동양화라고도 한다.

화투라는 말은 어원이 불분명하다. 도박이라는 은밀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놀이의 유래를 통해 추정해 볼 뿐이다. 화투짝이 들어오기 이전에 국내에는 투전(鬪?)이라는 전통 도박 패가 있었다.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로 만드는데 너비 1.5㎝, 길이 15㎝쯤 된다. 사람과 새, 물고기, 곤충 같은 동물을 그려 넣고 끗수를 표시해 놓았다. 60장이나 80장 한 벌이나, 실제론 25장 또는 40장만 썼다고 한다.


이 투전을 밀어낸 도박이 화투다. 19세기 말에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를 오가던 뱃사람들을 통해 들어온 하나후다(花札)의 첫 한자음 ‘화’와 투전의 ‘투’를 합친 게 화투라는 주장도 있다. 하나후다는 16세기 후반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일본에 들어온 가루타(carta)라는 서양 카드를 18세기 후반에 일본식으로 바꾼 것. 화투의 전래와 관련해선 다른 주장도 있다. 예전에 조선과 중국에서 숫자나 짐승을 그려 만든 패를 뽑아 우열을 가리는 수투(數鬪)라는 노름이 유행했는데…. 그것이 서양으로, 다시 일본으로 전해져 화투가 됐다는 것이다. 암튼 화투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화투가 민화투에서 삼봉, 육백, 섰다, 짓고땡, 고스톱(고도리) 같은 다양한 도박으로 변신하는 동안 중독돼 패가망신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술추렴에 빠지면 제집(아내)은 알아보지만, 화투 노름에 빠지면 제집도 못 알아본다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지난 주말, “너무 오래 화투 가지고 놀다가 쫄딱 망했다”는 한 저명인이 검찰 조사실을 다녀왔다. 팝아티스트를 자처하는 그는 ‘정통 화가도 아닌데’ 화투 그림 대작(代作) 시비에 휘말려 그 지경에 이르렀다. 대작 논란이야 어떻게 끝나든 화투는 경계 대상이다. 더 중독되기 전에 화투 얘기도 서둘러 끝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