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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공멸 행진곡

바람아님 2016. 6. 15. 00:49
[중앙일보] 입력 2016.06.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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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인 ‘몰러-머스크(Moller-Maersk)’는 덴마크 기업이다. 인구 500만 명에 불과한 소국이 해운시장 15%를 점유한다. 2위는 바다가 없는 스위스 국적의 ‘지중해 해운’으로 점유율은 13%. 유럽 소국이 글로벌 거대기업을 지켜온 기지(機智)는 정확한 예측에 의한 ‘손실의 내면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사즉생(死卽生)이다.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순신의 철학이 유럽에서 꽃피는 게 당혹스럽다. 아니 유럽만이 아니다. 선박 1100척을 보유한 중국원양해운집단은 노후화 선박 매년 5% 폐선, 12만 명 인원감축을 선언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15억의 중국몽인 바다 실크로드 (一帶一路)를 향한 뼈아픈 ‘손실의 내면화’다.

머스크사를 최고의 해운기업으로 등극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대우해양조선이라면 좀 웃기는 스토리다. 2011년부터 1만8000톤급 컨테이너선을 20척가량 건조해 줬는데, 자금융자책은 한국의 수출입은행이었다. 미래 문제는 뒷전, 회사가 우선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실체가 드러난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밀실기획에 낙하산 경영진이 착실히 응답한 결과였을 것이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에는 용선(傭船)을 권장했다. 자가(自家)가 아니라 월세로 살라는 정책이었는데,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에서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배가 주로 외국 선박이 된 이유다. 용선료 협상은 세입자가 월세를 면제해 달라는 궁색한 탄원이다. 사정이 그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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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은? 15년 전, 일본과 중국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엑손과 모빌 등 정유업체가 시장불황에 대비해 몸집을 대거 줄였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국민적 비난과 노조파업 같은 위험부담을 피하려 공격 경영을 택했다. 사즉생이 아니라 살고자 몸부림친 연명전략이 급기야 올해 숨이 끊어질 고비에 이르렀다. 세계 상선의 총톤수는 10억t인데 한·중·일의 건조능력은 연간 1억t, 선박당 수명이 30년이니 수주절벽은 한국이 제조한 참사다. 일본, 중국, 미국은 한국의 남동부 해안에서 울려 퍼지는 선박건조의 우렁찬 진군가를 걱정스럽게 듣고 있었던 거다.

하늘이 내린 천상의 선물로 여겼던 해양시추선은 자폭테러가 되었다. 조선 3사가 주문받은 해양시추선은 줄잡아 50척, 저유가로 인도 거부가 예정된 시추선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야 한다. 인도를 거부당한 시추선이 남동부 연안에 진열될 것이다. 외국에서 사 온 설계도면, 특수엔지니어링, 첨단기술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 것인데, 서민들이 십시일반 납부한 혈세 12조원이 그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조선 3사 노조가 8만 명 인력감축을 전제한 정부 구조조정 대책에 사생결단의 항전을 예고한 것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2년부터 금속노조와 조선노조연대가 불황 대비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 조선업 종합발전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묵살당했다. 대량해고와 고용불안에 신경을 곤두세운 노조와 설비감축, 합병, 매각 같은 폭풍 사안을 담판 지을 간 큰 경영진, 배포 큰 정치인은 없었다. ‘이제 와서 책임 전가?’를 외치는 조선노련의 분기탱천에 항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꼴이 우습게 됐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특단책은 앞뒤가 바뀌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구패러다임의 연장 내지 설비감축 정도에 불과하다. 적어도 향후 10년간 조선업과 해운업의 시장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미래지형도를 토대로 ‘사즉생’을 결단해야 했는데, 조선 3사의 생명 연장을 또 결의했으니 공멸(共滅)과 다름없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무적 판단이 더 승했다. 12조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엄중한 조건을 못 박아야 한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파산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단죄하는 것이 먼저다. STX조선에 5조원을 낭비한 자, 조선 3사를 파국으로 몰아간 경영진을 가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선 3사가 내놓은 자구책이 적절한지 최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고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 비상대책과 신산업모델을 내놓지 않으면 공적자금은 없다. 협력업체, 하청인력을 제외하고 조선업 노사는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다. 쥐꼬리 월급에 근근이 살아온 서민들이 그들에게 돈을 줘야 하나? 그렇게 퍼준다면, 조세 불복 운동이 불붙을 것이다.

조선 3사, 해운 2사를 모두 살리자는 정부 대책은 ‘공멸행진곡’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파산 기업들은 알짜배기 기업을 팔고 사업모델을 전면 재편했다. 수십만 명의 실직자가 쏟아졌다. 손실의 내면화, 기득권 포기를 선언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이건 합창, 제창의 문제가 아니다. 화려한 시절과의 이별가,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담합정치, 담합경영에 대한 장송가여야 한다.

송 호 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