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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칼럼] 해체된 햇볕정책

바람아님 2016. 7. 3. 05:35

(출처-중앙일보 2008.01.21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


DJ와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일이 터졌다. 통일부 폐지다. 

통일부는 DJ의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전담부서였고, 현정권에서는 이념적 정체성을 촉진하는 스트라이커로 역할을 해 왔다. 

통치자가 경제와 사회 분야의 부진을 만회하려고 통일부에 ‘한 건’을 기대할수록 국민의 그런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개성공단이 그렇게 태어났고, 1조원에 달하는 비료·쌀·전기가 통일부를 통해 북한으로 건네졌다. 

보수세력은 ‘자주파’로 명칭을 바꾼 주사파의 후예들이 이 ‘정치적 정훈학교’를 무대로 대북사업을 총괄 지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통일부 폐지는 곧 ‘햇볕정책의 종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수위는 기존 정책과의 연속성을 애써 강조했지만, 통일부 폐지와 업무 분산배치는 ‘햇볕정책의 폐기’를 암시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도 짐작할 수 있다. 

자주파가 동맹파로 대거 교체되고, 친북정책은 친미정책으로 전환될 것이며, 북한 문제는 한·미·일 삼각 공조에 편입된다. 

외교의 변방을 떠돌던 동맹파들이 햇볕정책의 파기 명령을 받고 속속 입국해 친북정책의 사령부를 점령할 것이고, 

모든 대북사업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레이블을 떼고 프로젝트형 사업 명칭을 붙일 것이다. 

이를테면, 역사적 의미로 한껏 부풀려진 평화협력 정책들은 그냥 ‘백두산관광사업’ ‘해주항만개발사업’ ‘철도개설사업’으로 

격하되고, 민족화해와 공존이라는 ‘어설픈 휴머니즘’보다 실리적 손익계산이 앞설 것이다. 

 

반통일 세력으로 낙인찍혀 온 보수진영의 울분이 이 정도로 풀릴지는 모르겠다. 

강경보수파들은 차제에 통일담론에서 민족이라는 뇌관을 제거하고 자주파의 온상을 철저히 파괴하라고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민족문제의 정치화를 위해 남한의 몇몇 노동·시민·민중운동 단체들이 북한에 호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고, 

‘패륜적’ 김정일 체제를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 보수집단이 반평화 세력으로 몰렸던 게 저간의 사정이고 보면, 

‘대북 실용주의’를 내세워 인수위는 친북세력과 종북(從北)담론을 냉정하게 정리하고 싶은지 모른다. 


사실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이 통일담론을 세력 확대의 수단으로 독점했고 대북정책들도 이념적 경계를 허무는 메뉴로 

채웠기에 보수세력의 이런 역풍을 맞는 것이 어찌 보면 정권 교체의 예정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역풍이 10년 성과를 부정하는 ‘역코스’가 아니기를 바란다. 

친미적 국제외교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고유한 민족적 쟁점을 해결하는 데에 그래도 ‘선샤인 폴리시’가 유용했음을 

미국 정가에서도 인정한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평양의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 합작사업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너무 퍼준 것’과 ‘너무 눈치 본 것’이 남한 대중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리고 역사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비난은 

정당하다. 그럼에도 냉전체제의 편향적 시각을 수정하고 조금은 어른스럽고 총체적인 시각을 갖추게 한 것은 아무래도 

햇볕정책의 공이다. 민족 모순의 해결에는 바로 이 총체론적 시각이 요청된다면, 통일정책의 외교 종속과 

유형별 분산 배치를 명한 인수위의 처방에는 오류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통일정책에서 외교전문가를 철저히 배격하고 이념편향적으로 일관한 것은 진보정권의 뼈아픈 실수였다. 

그렇다고 거꾸로, 외교논리로 통일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가는 역시 의문이다. 

민족 모순에 내재된 다층적 함의를 풀어내려면 국제관계적 역학을 포함해 민족정서와 이념의 역사적 분화 및 차별성에 대한 

포괄적 이해가 동시에 요구된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통일 문제인 터에, 외무부처로의 전격 이관이 본질에 부합하는 

적확한 조치인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둘째, 통일사업의 기능별 분산 배치도 문제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을 지식경제부로 이관한다면, 그것은 남한 자본과 북한 노동이 결합된 수출산업단지 이상의 것이 아니다. 

여타의 합작사업들도 그냥 개발사업일 뿐이다. 의미를 제거한 이런 상태를 원했는가? 

그렇다면 북한 난민 같은 복합적 사건은 누가 어떻게 처리할까 자못 궁금해진다. 

미래의 대북정책을 예견하고, 준비하고, 관장할 총체적 사령탑은 특임장관인가? 

햇볕정책의 ‘기능적 해체’, 그것은 곧 햇볕정책이 종말을 고하고 ‘대북 실용주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인가? 

종합적 청사진은 있는가?



[송호근 칼럼] 老제국의 탈주(중앙일보, 2016.06.28)

http://news.joins.com/article/20228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