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중앙일보 2016.06.28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노(老)제국의 선택은 옹졸했다. 아니 치졸했다.
영토 확장에 일찍 눈뜬 부르주아의 팽창력과 막강 무력으로 지구촌 곳곳을 점령한 나라,
불평등 무역과 강압 통치로 국부를 쌓은 나라 영국이 유럽연합(EU) 가입 25년 만에
역류된 손실을 감내하지 못하고 탈퇴를 감행한 것 말이다.
런던 관공서가 밀집한 의회광장에는 무력적 세계화를 일궈낸 식민통치기관들이 즐비하다.
‘4000만 대영제국민의 유혈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 식민지 사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Cecil Rhodes), 189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주 총독이 된
그는 신천지 점령 소식에 환호했으나 그곳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대영박물관에 가득 찬 식민지 보물들은 제국의 국부가 영연방 53개국의 피와 땀으로
구축되었음을 알려주는 역사적 증거다.
영국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극동지역, 청(淸)과 조선은 제국의 탐욕을 돋운 최후의 먹거리였다.
나가사키에 거점을 확보한 동양함대는 우선 청을 공략해 거대한 중국 시장을 열었다. 몇 년 뒤 무역적자가 심해지자
영국은 인도산 아편을 대거 살포했다.
콜레라보다 더 혹심했던 아편중독은 동양의 제국 중국을 쓰러뜨렸다.
다음 차례는 조선. 1886년 4월 15일, 나가사키 주둔 영국함대 사령관 도웰 제독은 해군성에 급전을 쳤다.
“전함 아가멤논, 페가수스, 파이어브랜드호(號)를 발진시켰음. 목표지는 포트 해밀턴”. 포트 해밀턴은 거문도의
영국 명칭으로 남하하는 러시아를 방어하는 천연의 요새였다. 조정은 북경의 이홍장에게 애원했다. 일, 러, 청의 중재로
10개월 뒤 영국함대는 훗날을 기약하며 철수했다. 대영박물관 뒷방에 위치한 조선관이 유달리 초라한 이유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통치가 버거워진 영국은 대영제국(British Empire)을 영연방(British Commonwealth)으로
개칭했다. ‘제국’에서 ‘공공선’으로의 대전환은 식민지에 자치령 내지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노쇠한 제국이 택한 신노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처칠 총리가 황폐화된 유럽 복원을 위해 거론했던 ‘유럽합중국’ 제안, 유럽공동체(EC)를 종국적으론
정치결사체로 승격시키려는 EU 창설의 근저에는 평화공존과 상부상조라는 공동체적 염원이 깔려 있다.
국경을 허무는 작업은 인류 유전자를 수정하는 것만큼 어렵다.
유럽연합은 역사의 신(神)도 깜짝 놀랄 만한 과제를 착실히 수행했다.
국가 간 이동장벽을 허문 솅겐조약, 외교안보와 재정정책의 원칙을 조율한 마스트리흐트조약, 공동화폐인 유로화 도입,
EU 이사회 창설 등 유럽합중국을 향한 단계적 행진은 역사 철칙을 부수는 세기적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정작 공공선을 창안한 국가가 탈주한 것이다.
그것도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매우 이기적 명분으로 말이다.
EU 해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대체로 극우파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물 밀 듯 밀려오는 난민들, 이슬람화, 취업난, 의료와 교육 등 공공복지의 난맥상, 나날이 격해지는 인종 혐오가
오히려 자국의 공동체정신을 파괴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남부유럽의 농산물과 북부유럽의 공산품 간 불균등 교환에 의해 경제적 종속이 심화된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그렉시트
(Grexit)가 그래서 발생했고, 제조업이 취약한 스페인, 자유무역으로 먹고살았던 네덜란드도 출구를 암중 모색 중이다.
핵심국인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라고 해서 영국만한 손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IS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의 자부심인 톨레랑스(Tolérance)에 호소하고 있고,
독일은 역사에 진 빚을 갚으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물론 이 핵심 국가들이 EU 유지를 위해 내는 막대한 부담금보다
실질적 이득이 더 크다는 계산도 일리는 있겠다.
하지만 국경 폐쇄와 국가 간 무한경쟁으로 얻는 이득은 언제나 반문명적 전쟁으로 파괴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긴다면
극우파들이 내세우는 단기적 손실과 고통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걸 못하겠다면 선진국 자격이 없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리틀 잉글랜드가 될 운명이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투표 후 정신이 번쩍 든 영국인들,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
노제국의 탈주는 1990년대 초부터 추진된 ‘세계화’에 중대한 균열을 가한 대사건이다.
미국 대통령 부시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몰타에서 ‘신질서 개막’을 선언한 해는 89년, 이 생소한 단어가 영어로
‘globalization’으로 개념화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영국의 이탈은 세계통합 시대의 종언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불길한 징후다.
모든 제도를 세계화 시계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써 왔던 한국, 세계 시장의 부침에 희비가 교차했던 수출대국 한국은
이제 곧 엄습할 보호무역의 역공세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아,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고 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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