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고조선 영토 좀더 서쪽으로" vs "요하 넘지 않았다"

바람아님 2016. 6. 21. 23:48
연합뉴스 2016.06.21. 17:32

역사학계, 고조선 국경 '패수' 위치 토론회서 격돌

한나라와 고조선의 경계였다는 '패수(浿水)'는 과연 어디인가. 고조선 영토 범위를 결정하는 상고사의 핵심 쟁점을 두고 역사학계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제2회 상고사 토론회에서 강단과 재야 역사학계의 연구자들은 엇갈린 견해를 제시했다. 강단에서는 오늘날 중국 랴오닝(遼寧)성에 있는 훈허(渾河)가, 재야는 랴오허(遼河·요하)를 건너 서쪽으로 더 나아간 허베이(河北)성 롼허(난<삼수변+欒>河)가 고조선의 서쪽 국경이었다고 주장했다.

패수는 고대 각종 사료에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으로 기록됐지만 위치가 명확하지 않아 대동강부터 롼허까지 여러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의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 소속으로 재야를 대표해 주제발표를 한 김종서 박사는 우선 패수가 압록강이나 청천강이라는 기존 강단의 학설을 사료에 나타난 지리적 근거로 배척했다.


패수가 등장하는 첫 역사적 기록은 '사기 조선열전'이다. '위만이 무리 1천여명을 모아서 망명하였다…동쪽으로 달아나 (요동군) 요새를 나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는 대목이다. 서쪽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청천강·압록강은 남북으로 건널 뿐 동쪽으로는 넘을 수 없으므로 패수가 아니라는 게 김 박사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강의 흐름에 더해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할 당시 지정학적 특성을 기록한 각종 사료를 토대로 롼허가 패수라고 판단했다.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박준형 학예연구사는 주류 학계에서 힘을 얻는 훈허설을 내세웠다. 고조선·한나라·흉노의 역학관계를 분석하고 후한대 편찬된 역사서 '전한기'의 기록을 해석한 결과다.

박 연구사는 '흉노의 영역이 동쪽으로 예맥·조선과 접했다'는 사기 흉노열전 기사를 근거로 "현재까지 훈허∼압록강 유역에서 흉노와 관련된 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다. 고조선과 한의 경계는 훈허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그 이북으로 고조선과 흉노가 접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수(遼水)를 새(塞·변경에 설치하는 군사시설)로 삼았다'고 기록한 전한기의 '요수'가 곧 패수를 뜻한다고 봤다. 패수를 고조선과 한나라의 경계로 기록한 사기 조선열전은 '한서 조선열전'에 거의 그대로 실렸고 전한기는 한서를 읽기 쉽게 편찬한 책이다. 박 연구사는 "전한기에는 사기와 한서 저술 당시의 역사지리 인식이 반영됐다"며 "전한기의 요수가 오늘날의 훈허(소요수)"라고 말했다.


재야에서는 훈허설이 청천강설이나 압록강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사군 한반도설'과 '낙랑군 대동강설'에 바탕을 뒀다고 비판했다. 고조선의 활동무대를 한반도에 한정했다는 주장이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지금까지 강단사학에서 고조선의 강역을 서쪽으로 가장 넓게 확대한 이론"이라면서도 "사료를 종합 검토하면 고조선의 중심지는 요서지역이 확실하며 현재 랴오허의 동쪽에 있는 훈허는 패수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패수의 위치가 허베이성 동쪽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변방의 초라한 반도민족이 아니라 발해를 깔고 앉아 대륙을 지배한 위대한 밝달(밝은 땅) 민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며 "그런 역사의식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