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쟁쿠르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영국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영국군은 포로로 잡힌 프랑스군들에게 자신들의 멀쩡한 손가락을 두 개 들어 보이면서 조롱을 했다. 요즘 서양에서 누군가를 욕을 하거나 모욕을 줄 때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행동의 유래는 바로 아쟁쿠르 전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아쟁쿠르 전투로부터 6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영국인들은 다시 유럽인들을 향해 두 개의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43년간 함께 몸담았던 유럽연합(EU)과 결별키로 한 것이다. 영국인들은 23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 51.89%, “잔류” 48.11%로 유럽대륙에서 독립된 ‘나홀로’ 길을 택했다.
도대체 왜 영국인들은 EU 탈퇴의 길을 택했을까. CNN방송은 25일(현지시간) 아쟁쿠르 전투 이야기를 내세우면서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배경을 분석했다.
CNN방송은 영국인들이 EU 탈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수년 전부터 급증하고 있는 이민자들을 들었다. 600여 년 전 헨리5세의 병사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영국의 펍은 요즘 정치인과 교수, 엘리트들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했다.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장치들이 이민자들을 영국으로 불러들였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로서는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이민자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영국인들은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건 몇몇 부자들과 정치인들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번 부자들이 정치 엘리트들과 야합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 10번가 앞에서 CNN방송 기자를 만난 한 경찰관은 총리 관저를 가리키면서 “듣지를 않는다”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반대파들은 이민자들 때문에 영국 경제가 큰 이득을 얻고 있다면서 영국의 EU 잔류를 주장해 왔다. 문제는 영국인들이 그 혜택을 골고루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안 되는 부자들과 엘리트들의 주머니 속으로 돈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리아 등 중동 분쟁 지역으로부터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런던과 파리, 브뤼셀 등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 과격세력들에 의한 대형 테러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동유럽 지역 등지에서 몰려온 이민자들로 이미 극도의 불만에 차 있던 영국인들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던져진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폭발 직전인 영국인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카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당수 등 브렉시트 지지파들은 영국인들의 불만을 파고들었다. 영국의 영광을 되찾자, 유럽 뿐 아니라 영국 정치인들의 손으로 들어간 통제권을 되찾아오자고 호소했다. 또한 중동난민 증가에 따른 이슬람 테러 위험성을 부추겼다. 과밀학급이 발생하고,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일은 모두 이민자들의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민자들에게 돌아가는 무상 복지로 인해 영국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 혜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승리로 의기양양해진 패라지는 영국의 새로운 항해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브렉시트 지지파 중 하나였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차기 총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헨리5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지 1년 만에 죽었다. 그의 뒤에는 전쟁을 하느라 늘어난 빚만 잔뜩 쌓여 있었다. 몇 년 이후 백년전쟁은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영국인들이 감행한 브렉시트는 앞으로 어떤 역사를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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