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지구촌 전망대>또다른 對中 가늠자 '남중국해'

바람아님 2016. 7. 7. 00:08
문화일보 2016.07.06. 14:40

신보영 워싱턴 특파원

협력과 갈등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미·중 관계가 오는 12일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이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관한 판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필리핀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은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PCA에 제소한 지 3년 6개월 만이다.


핵심 쟁점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설정한 구단선(九段線)의 위법성 여부와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인공섬의 법적 지위에 관한 판단 등 2가지다.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지만, PCA가 중국 인공섬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일부는 대만이 점거 중인 타이핑다오(太平島·영문명 이투아바)만 섬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암초로 평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섬은 영해 12해리·배타적 경제수역(EEZ) 200해리 권한을 인정받지만, 암초는 영해 12해리만 인정받는다. 인공섬에는 아무 권한이 없다. PCA 판결에 따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건설하는 인공섬과 자원 개발, 군사훈련 등이 모두 국제법 위반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미리부터 “어떤 판결도 인정하지도, 준수하지도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5∼11일 남중국해에서 대대적 군사훈련까지 예고하고 있다.


원유 수송량의 90%가 남중국해 항로에 의존하는 한국에도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경제적 이해 때문만은 아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중국과 1500㎞에 달하는 국경을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도 통일 한반도가 맞닥뜨릴 주요 도전이 될 것이다. 굳이 통일까지 상정하지 않더라도 한·중은 서해에서 해양경계 획정을 위한 협의를 1996년 개시했지만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고, 동중국해에서도 이어도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번 PCA 판결이 더욱 중요한 것은 갈수록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북한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이 ‘북핵 불용’을 언급하면서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모양새지만, 남중국해와 같이 핵심 이해가 걸려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충돌도 주저하지 않는 중국이 국경지대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 전문가들이 북한 붕괴 시 중국의 최대 우려로 북한 난민 유입을 꼽으면서 중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을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대응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를 올렸다가 한국산 휴대전화의 대중(對中) 수출이 중단되면서 혼쭐이 났던 ‘마늘 파동’ 수준이 아니다. 중국은 이제 급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영토·영유권 갈등에 비대칭적인 경제적 조치를 내리는가 하면, 군사적 대응까지 내놓을 태세다. 중국이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대일 희토류 수출 중단이라는 조치를 취한 것이 전자의 대표적 사례라면, 이번 남중국해 판결 이후에는 후자를 본격 가동할 것이다. 그레고리 폴링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남아 국장도 중국이 PCA 판결 이후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이거나 필리핀의 접근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으며, 동중국해에서와 마찬가지로 남중국해에서도 방공식별구역(ADIZ)을 일방 선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중국의 공격적 행보를 제동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문제는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서 판명됐듯이 미국이 전후에 만들어낸 국제주의 질서가 흔들린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남중국해 문제는 미·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 미·중 관계 변화를 읽어내는 기회이자, 앞으로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전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늠자다. 하지만 우리의 번영·안보를 지켜줄 수 있는 균형추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만든 자유무역·국제주의 질서하에서 성공한 우리는 중국과 같은 ‘질서 파괴자’가 돼서는 안 된다. 이게 한국 외교가 미국의 남중국해 대응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