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5.1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한 가지 흥미로운 자료는 1980년과 2000년 두 시점에서 15세
이상 성인 인구의 문자 해독률을 비교한 수치이다. 이 자료를 보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1980년에 비해
2000년에 문자 해독률이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20년 동안 르완다에서는 40%에서 67%로, 파키스탄에서는
28%에서 43%로, 말리는 14%에서 40%로, 심지어 문자 해독률이 가장 뒤처진 국가인 니제르공화국에서도
8%에서 16%로 상승했다. 지금도 이 수치는 계속 상승 중이다. 그래서 2030년경에는 적어도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글자를 깨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원전 3000년경에 처음 문자가 발명되었으므로, 5000년이
걸려서 드디어 인류 전체에 문자가 보급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읽기와 쓰기에는 대체로 셈하기도 동반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능력 면에서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한 역사가의 표현을 빌리면 문자와 숫자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주먹질을 당하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문자와 숫자를
알게 되면 인간은 곧 주변 환경을 제대로 알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어느 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런 상태에 도달하면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도약 단계에 들어간다. 근대사의 선두에 섰던 유럽에서 17~20세기에
일어났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의 빈국들 역시 그 비슷한 단계를 맞이하는 중이다.
물론 문자 해독률이 높아진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극적인 발전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런
단계를 거쳐야만 발전이 가능하다. 아마도 교육의 확대와 그에 뒤이은 고통스러운 발전이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혼돈과 파괴의
양상도 발전을 향한 초기 단계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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