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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9] 알렉산드로스

바람아님 2013. 7. 14. 08:10

(출처- 조선일보 2009.05.2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BC 356~BC 323)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숱한 정복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으며, 그 결과 그가 사망할 당시에는 페르시아를 비롯해 이집트·아나톨리아·메소포타미아·

인도 서부의 펀자브 지방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 당시 사정으로 보면 알렉산드로스는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정복 과업을 마친 직후 서른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열병에 걸려서 

죽었다.

영웅은 곧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지어졌고, 

서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장터에서 이야기꾼들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알렉산드로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신화 가운데에는 그가 지상낙원(paradise)에 찾아간 이야기도 있다. 예로부터 세상의 동쪽 끝에 

지상낙원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므로, 당시 세계의 끝이라고 여겨지던 인도의 갠지스강에 도달한 

알렉산드로스는 그 근처에서 낙원을 찾아 나섰다. 드디어 강변에 큰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를 발견했다. 

알렉산드로스 일행은 도시의 입구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사흘 동안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마침내 작은 창 

하나를 찾아냈다. 그곳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 도시는 지복(至福)을 누리는 사람들의 도시이니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대신 신비의 돌을 하나 주었다.

현자(賢者) 한 명이 알렉산드로스에게 이 돌의 신비를 설명해 주었다. 천칭저울로 이 돌의 무게를 재니, 세상의 그 

어떤 물건보다도 이 돌이 더 무거웠다. 그런데 돌에 먼지를 묻히고 나자 이 돌이 깃털보다도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먼지는 죽음을 상징한다. 인간의 야망, 명예, 권력도 이 돌과 같아서 그것이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죽음이

닥치면 한낱 깃털만큼의 무게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이야기의 교훈을 깨닫고 바빌론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12세기 중엽에 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 지상낙원에 가다〉라는 책의 내용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