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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죽을 때 타인 눈으로 내 삶 돌아보게 돼…죄 많았다면 그게 지옥”

바람아님 2016. 7. 10. 00:40

[중앙일보] 입력 2016.07.09 00:42


2008년 11월 10일 새벽,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살던 이븐 알렉산더(63·당시 나이 55세) 박사는 등에 통증을 느껴 잠에서 깼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욕실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침 무렵엔 경련까지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갔다. 이후 7일간 그는 뇌의 기능이 정지된 코마(coma)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의료진들은 그가 성인에겐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박테리아성(대장균) 뇌막염에 걸렸으며 회복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사이 그의 영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진흙으로 가득 찬 느낌의 암흑 상태에 한동안 머물다 금빛·은빛 빛줄기를 퍼뜨리며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는 둥근 물체의 틈을 통과해 빛의 세계로 들어갔다.” 싱그러운 녹음과 폭포, 꽃과 나비와 음악이 있는 그곳에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과 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존재 전체로 경험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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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존재의 근원적 본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 두 가지를 통합해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영사]


알렉산더는 뇌과학자이자 신경외과 전문의였다. 미국 듀크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버지니아대 등에서 교수와 의사로 근무했다. “인간의 의식은 뇌의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으며 영적 체험이나 신비로운 경험담을 들으면 “그것은 환상”이라고 단정하는 과학적 회의론자였다. 하지만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한 후 그는 변했다. 자신이 가진 과학·의학 지식을 총동원해 임사체험에 대한 증명을 시도한 책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를 발표했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의식(consciousness)은 존재한다” “신(神)과 사후 세계는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2012년 미국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세계 30여 개국에 소개됐으며 한국에서도 2013년 출간돼 7만 부가 팔렸다.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두 번째 책 『나는 천국을 보았다-두 번째 이야기(The Map of Heaven)』에서는 영적(spiritual) 세계를 강조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삶, 임사체험 후 자신에게 도착한 많은 이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이븐 알렉산더 박사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두 번째 이야기를 쓴 이유는.
“2008년 임사체험 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정신적 경험을 수없이 접했다. 임사체험이 오랜 역사에 걸쳐 전 세계의 모든 나라·문화권에서 끊임없이 발생해 온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천국(heaven)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전하며 우리 영혼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마음을 열고 진실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이를 알려야 했다.”
당신이 체험한 사후 세계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인가.

“내가 경험한 사후 세계는 보편적인 것이다. 여러분은 천국에 대한 나의 설명을 성경, 쿠란, 베다 문헌, 혹은 기타 여러 종교 문헌에 적힌 천국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세계 곳곳의 독자로부터 내 책이 본인들의 종교가 설명하는 천국을 얼마나 완벽하게 기술하고 있는지 감탄하는 e메일을 받는다. 나는 우리 모두가 동일한 ‘하나의 신(one God)’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지옥(hell)’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도 있나.

“나는 ‘지옥’이라는 개념을 ‘사람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에 마주치는 힘든 시나리오(difficult scenario)’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죽음의 고비에서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나는 어떤 이들의 영혼이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엿보기도 했는데, 이때 삶을 판단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개인의 ‘보다 높은 단계의 영혼(higher soul)’이었다. 이때는 자신의 눈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보게 된다. 만약 당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 느낌이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해 보라. 그것이 바로 ‘지옥’일 것이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평생을 뇌와 의식에 대해 연구했다. 공상이나 엉성한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과학의 정직성과 깨끗함을 좋아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혼수상태와 임사체험을 통해 의식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우리가 목적 없는 화학반응으로 탄생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영적인 우주에 살고 있는 영적인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2012년 6월에 신경외과 의사 일을 그만두고 영적인 삶의 중요성에 관해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신경과학에선 임사체험을 “생명을 이어가려 기를 쓰는 뇌가 만들어낸 부산물”로 파악했다. 변연계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왜곡된 기억의 단편이라거나, 약물로 인한 강력한 환각체험이라는 해석 등이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 알렉산더 박사는 이런 주장에 의학적 근거를 들어 반박한다. 왜곡된 기억이나 환각 모두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작용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데, 당시 자신의 대뇌피질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이어졌다. 뇌과학자이자 작가인 샘 해리스는 “그의 임사체험은 그가 코마 상태에서 깨어날 때, 즉 대뇌피질의 기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전히 당신의 체험을 믿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타인에게 믿음을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경험과 나의 선택을 공유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얘기에 고무돼 변한다면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모든 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영혼이 보고한 영적 경험에 대한 압도적인 실증 데이터는 현대 과학에 최대의 도전이 되고 있다. 진정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회의론자라면 자연히 거짓 물질주의 패러다임(즉 물질만이 존재하며 뇌의 물질적 작용이 의식을 창조한다)을 거부하고 더 큰 영적인 풍요를 지닌 견해를 포용할 것이라고 본다.”
‘두뇌가 의식을 만든다’는 건 과학계 상식인데.

“이 주장에 여전히 매료된 이들에게 나는 두 가지 현상을 이야기한다. 우선 치매 노인들이 임종 직전에 순간적으로 놀라운 인지나 통찰력을 되찾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서번트 증후군’(일종의 뇌 손상을 입은 이들이 탁월한 계산능력이나 완벽한 기억력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화된 뇌 신경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갈수록 늘어나는 임사체험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의 진보는 원거리 투시나 텔레파시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의 과학’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른 삶’을 인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란다(I hope so).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력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임사체험 후 우주에는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서가 있으며, 우리 모두는 살아갈 이유가 있어 이 땅에 온 존재란 걸 깨달았다. 당신의 영혼이 계속 살 것이라 믿으면 천국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을 궁극의 개성과 독특함을 지닌 존재로 대할 수 있다. 나의 큰 변화 중 하나는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참을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길은 우리 자신과 타인을 모든 면에서 사랑(love), 연민(compassion), 용서(forgiveness), 용인(acceptance)과 자비(mercy)로 대하는 것이다.”
 
[S BOX] “어두운 터널 지나 빛나는 곳으로…” 공통 경험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말하는 사후 세계의 묘사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알렉산더 박사가 음침하고 축축한 곳에서 빛으로 나아갔다고 말하듯, “어두운 터널이나 계곡을 통과해 빛나고 생생한 풍경(초강력 현실)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구도다. 또 ‘맞이하는 사람(greeter)’, 즉 지상에서 알았던 사람들이 그들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증언도 반복해서 나온다.

알렉산더 박사 역시 임사체험 중 자신을 안내하는 한 여성을 만났다.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 꽤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이 알렉산더가에 입양되기 전의 친부모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는 사후 세계에서 만난 사람이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여동생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웠던 이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알렉산더 박사는 “만약 당신의 남편이 죽었다면, 그리고 남편이 생전에 홍관조를 사랑했다면, 그런데 남편의 기일에 묘지에 가니 홍관조 한 마리가 묘비에 앉아 있었다면 이를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용납하지 말라”고 했다.

“임사체험을 한 수많은 사람들은-아마도 젊은 사람일수록-거부당할 거라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경험을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사체험 혹은 유사한 영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사랑이 퍼지게 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