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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축알못' 펠레

바람아님 2016. 7. 12. 00:02
경향신문 2016.07.11. 20:55

축구황제 펠레는 ‘축알못’(축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터넷 신조어)의 낙인이 찍혀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의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축구도 모르는 사람이 까분다’는 독설까지 퍼부었다. “브라질은 예선통과도 어려울 것”이라던 펠레의 예측과 달리 우승컵을 안았으니 큰소리칠 만했다. 1990년대 스타 호마리우는 “펠레의 입에 신발을 처넣어야 할 것”이라 욕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우승팀을 꼽으려면 펠레와 반대로 걸면 된다”고 비아냥댔다.

펠레는 하와이 킬라웨이아 화산의 분화구에 사는 전설의 여신이기도 하다. 펠레 여신은 관광객이 하와이의 돌과 화산재를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저주를 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펠레의 저주다. 하와이 펠레의 저주가 관광객을 막는다면, 브라질판 펠레의 저주는 우승을 막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펠레의 저주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한 펠레가 “브라질이 우승할 것”이라 큰소리쳤다가 예선탈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독일·페루가 우승후보’(1978년 월드컵·두 팀 다 예선탈락), ‘브라질·아르헨티나·스페인이 유력후보’(1982년 월드컵·세 팀 다 중도탈락), ‘프랑스·잉글랜드·이탈리아를 주목하라’(1986년 월드컵·아르헨티나 우승)….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아르헨티나의 부활과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견했지만 결과는 8강탈락(아르헨티나), 예선탈락(한국)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비극이 일어났다. 펠레가 자신있게 우승후보로 점쳤던 콜롬비아가 예선탈락했다. 조기귀국한 콜롬비아 수비수 에스코바르는 분노한 시민의 총격을 받아 피살됐다. 차마 웃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펠레가 2002년 월드컵 주제가를 부른 아나스타샤의 가슴을 ‘나쁜 눈으로’ 훔쳐보는 듯한 사진이 보도됐다. 그런데 1년 뒤인 2003년 아나스타샤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펠레의 저주는 어제 끝난 유로 2016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4강 이상 갈 수 없다’던 포르투갈이 보란 듯 우승을 차지했다. 이미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할 것’이라 예측한 펠레다. 브라질 사람들로서는 질색팔색할 이야기다. 브라질은 얼마 전 코파 2016에서 예선탈락했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