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정해지면서 아파트 생활에 접어든 지 4년차다. 유학생활 9년을 빼고 30년간을 나는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흙을 밟고 살았던 셈이다. 도심의 소음으로 신경쇠약에 걸리신 아버지 탓에 우리 가족은 일찍 전원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한 시간에 버스 한 대가 다니는 서울 인근의 그린벨트 생활에 주변 분들은 많이 염려했지만, 초등학생인 나에게 전원생활은 보물섬과 같이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차산 기슭, 개울 앞에 자리한 그 집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꽁꽁 숨겨온 탐험 소질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계절이 여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개울로 나가 놀기에 급하다. 기르던 개와 동생까지 덩달아 뛰어나왔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스승 삼아 노는 우리에게 여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 여름방학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널찍한 평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저녁상을 물리면 이웃들도 하나둘 건너왔다.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여름밤의 높고 검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 밑의 가로등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 같았다. 그 깊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선명한 노란 가로등 아래서 우리 또래들은 ‘다방구’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했다. 그 재미나고 흥분되는 몰입의 순간은 누군가 넘어지거나 큰 울음이 터져야 비로소 흥이 깨졌다. 평상 위에서 어른들이 나누던 대화는 어린 우리에게는 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그 시절 우린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구미호’와 ‘거꾸로 떨어져 죽은 여중생’ ‘홍콩할매 귀신’ 같은 으스스한 괴담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다. 그런 날이면 두려움에 떨며 학교 화장실도 함께 모여 가야 했고, 깊은 밤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오싹함이 여름밤을 더욱 절정으로 몰아갔다.
여름의 보물은 숲에 숨어 있었다. 숲속의 짐승들과 곤충들의 몸짓 소리,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온몸으로 울어대는 소리가 나무들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매미는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라는 데 7년의 긴 시간이 걸린다는데, 단 7일 만에 막을 내리는 매미의 세레나데는 그래서 더 절절하다. 아무리 도시 매미가 시끄럽다지만 그리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가 없는 여름은 지루하고 싱거울 것 같다.
오래전 동네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에어컨과 선풍기에 둘러싸여 지내며 카디건을 두르거나 냉방병을 걱정한다. 더위에 아랑곳 않고 생기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여름은 세월의 먼지에 쌓여 빛바래져 버렸다.
얼마 전 막내 아들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릴 적 우리는 지루한 오후를 기다린 끝에야 간신히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말괄량이 삐삐’는 방송사 측의 사정인지 몇 번의 재방송을 거듭하고도 결말을 보여주지 않아 무척 상심했었다. 이에 비해 요즘은 여러 채널에서 아예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금은 인터넷만 간단히 검색해도 프로그램의 결말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무작정 목을 빼고 텔레비전 방영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 그 간절한 궁금증은 지금의 편리함과 바꾸기 싫을 만큼 아련한 기다림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나의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맞이했던 축제 같은 여름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까. 뻘뻘 땀을 흘리면서도 더위를 즐겼던 그 시절 그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 리모컨부터 찾는 지금의 내 모습이 더욱 씁쓸할 뿐이다.
하태임 화가·삼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