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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세계사] '1월의 강'이라 불리며… 한때 포르투갈 수도였대요

바람아님 2016. 7. 14. 10:11

(출처-조선일보 2016.07.14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기획·구성=김지연 기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다음 달 열리는 하계 올림픽 개최지, 움푹 들어간 해안선 가지고 있어… 유럽 탐험가들 바다를 강으로 오해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남미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 써요

다음 달이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제31회 하계 올림픽이 열려요. 
남미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도시로 아름다운 코파카바나 해변과 코르코바도산 정상에 있는 
높이 38m의 거대한 예수상으로도 유명해요.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리우데자네이루는 호주의 시드니,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힌답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1월의 강(江)'

리우데자네이루는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Rio de Janeiro)'이라는 뜻이에요. 'Rio'는 포르투갈어로 '강'이고, 
'Janeiro'는 '1월'을 뜻하죠. 포르투갈어로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포르투갈 탐험대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대서양을 따라 길게 이어진 브라질 해안을 따라가던 포르투갈 탐험대는 큰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리우데자네이루를 
발견했어요. 때마침 그날이 1502년 1월 1일이었고, 탐험대는 "1월에 강을 발견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에요.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산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예수상이 리우데자네이루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산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예수상이 리우데자네이루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이 예수상은 높이는 38m, 무게는 무려 1145t이나 된다고 해요. 
/토픽이미지
그런데 사실 포르투갈 탐험대가 발견한 것은 강이 아니라 바다랍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바다가 육지로 움푹 들어간 모양의 구아나바라 만(灣) 서쪽에 있어요. 
그런데 구아나바라 만과 대서양이 만나는 길목이 아주 좁다 보니 탐험대는 이것을 보고 큰 강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랍니다.

<게시자 추가 자료 -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

남미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브라질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예요.
그 이유를 알려면 1494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맺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알아야 한답니다.

15세기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배를 타고 인도로 갈 수 있는 항로를 찾고 있었어요.
그 유명한 '대항해시대'예요. 포르투갈은 '해양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엔리케 왕자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고 있었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반대로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라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아예 대서양을 가로질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어요. 대서양을 가로지른 콜럼버스는 1492년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먼저 발견한 스페인은 
1493년 교황으로부터 "대서양 가운데를 기준으로 서쪽에서 발견된 땅은 스페인이 
갖도록 하라"는 약속을 받아냈어요.

하지만 이 약속이 스페인에만 유리하다고 생각한 엔리케 왕자는 "대서양 가운데가 
아닌 새로운 기준선을 정하자"고 요구해요.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엔리케 왕자의 협박에 전쟁을 원하지 
않은 스페인은 새로운 기준을 정하기로 했어요. 그리하여 1494년 6월 두 나라의 
대표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 토르데시야스에서 다음과 같은 조약을 맺어요.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군도에서 서쪽으로 1770㎞ 떨어진 곳에 남북으로 길게 
경계선을 긋는다. 이날 이후 경계선 서쪽에서 발견된 땅은 스페인이 갖고, 
경계선 동쪽에서 발견된 땅은 포르투갈이 갖는다."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대서양 가운데를 지나던 경계선은 남미 대륙 가운데를 
지나게 되었어요. 그 결과 경계선 동쪽에 있는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고, 경계선 서쪽에 놓인 대부분의 
남미 국가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후 두 나라의 식민 지배가 수백 년간 이어지면서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나머지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에요.

◇리우데자네이루가 한때 포르투갈의 수도가 된 사연

1763년 식민지 브라질의 수도가 된 리우데자네이루는 이후 약 200여 년간 브라질의 수도였어요. 
그런데 이 리우데자네이루가 약 13년간 포르투갈의 수도가 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그 발단은 1807년 나폴레옹이 발표한 '대륙 봉쇄령'이었어요. 
당시 유럽 대륙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유일하게 자신과 맞서던 영국을 굴복시키려 했지만,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화가 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와 영국 간의 해상 교역을 
금지시켰는데, 이게 바로 대륙 봉쇄령이에요.

강력한 해군을 가진 영국은 이에 맞서 대륙 봉쇄령에 동참하는 나라의 배는 대서양을 지나지 못하도록 하는 
'해상 봉쇄령'을 내리게 됩니다. 식민지인 브라질과의 교역을 계속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반드시 지나야 하는 포르투갈은 
나폴레옹이 무서웠지만 대륙 봉쇄령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이에 분노한 나폴레옹은 군대를 보내어 포르투갈을 점령해버렸어요. 
졸지에 영토를 잃은 포르투갈 국왕 주앙 6세는 영국의 보호를 받으며 식민지인 브라질로 망명을 떠났어요. 
1808년 브라질에 도착한 주앙 6세는 "이제부터 리우데자네이루가 리스본을 대신한 포르투갈 왕국의 새로운 수도"라고 
선포했어요. 이때부터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주앙 6세가 포르투갈 본국으로 돌아간 1821년까지 13년간 
리우데자네이루는 포르투갈의 수도였답니다.

1822년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리우데자네이루는 1960년까지 브라질의 수도로 자리매김하였어요. 
브라질 정부가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기면서 리우데자네이루는 수도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남미에서 가장 근대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고 있답니다.




엔리케 왕자 ?


스페인 포르투갈사

동 엔리케 왕자의 활약과 목적

포르투갈 인들의 특이한 해양성 기질과 영토 확장의 모든 동기들은 항해 왕자로 불린 동 엔리케(D. Henrique)를 

고무시켰고, 15세기 초·중엽에는 포르투갈의 남쪽인 지브롤터 해협에 위치한 사그레스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인 

해상 활동을 시작하게 했다. 동 엔리케의 생각은 연대기 작가인 고메스 이아네스가 쓴 

『아프리카 기네아의 정복과 발견사』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다.



황해 왕자 엔리케의 초상[Source=Crónicas dos Feitos de Guiné by Gomes Eanes de Zurara (codex of Bibliothèque nationale de Paris)]


항해 왕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위험한 모험을 했다.

① 당시까지 아무도 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카나리아 제도와 보자도르 곶(Cabo Bojador : 불룩 튀어 나온 곶)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에 관해 알고 싶은 욕망
② 그 미지의 세계에서 포르투갈에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고, 또 그 곳에 포르투갈의 산물을 수출하여 

교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
③ 무어 인의 세력이 어디까지 끼치는지 알고 싶은 생각
④ 그들의 신앙의 적인 무어 인들에 대항하여 돕기를 원하는 크리스트 교 왕국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은 욕망
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로 미지의 세계에 믿음을 심고자 하는 욕망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들은 첫째가 그의 과학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이고, 둘째는 상업적인 관심, 

셋째는 군사적인 관심, 넷째와 다섯째는 종교적인 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일, 항해 왕자의 활동이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면, 세 가지 목표를 지녔던 그의 발견을 위한 계획은 천재성을 

지닌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수많은 원정대가 떠났던 아프리카 대륙, 유럽 대륙의 서쪽에 있을 다른 세계, 그리고 가장 먼 곳인 인도를 목표로 

삼았다. 몇몇 연대기 작가들은 항해 왕자의 가장 먼 목적지는 에티오피아, 즉 프레스트 주앙(Preste João)의 나라였다고 

기술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그의 최종 목적지는 항료와 금의 원산지인 인도였고, 동쪽에서 이슬람 세력을 공략하고 

바다를 제패()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1422년에 항해가 안타옹 곤살베스(Antão Gonçalves)가 아프리카 서해안의 리오두오우르를 향해 떠날 때, 

항해 왕자는 그에게 그 곳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하도록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프레스트 주앙의 나라도 찾아서 

알려 줄 것을 요청했다. 항해 왕자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책에서 3개의 인도, 즉 대() 인도, 소() 인도, 

중() 인도가 있다고 기술한 것과 프레스트 주앙 왕국이 아프리카에 존재한다고 전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최종 목표가 인도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 엔리케 왕자의 활약과 목적 (스페인·포르투갈사, 2005. 7. 15., 미래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