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계략 숨긴 '남대문=고적 1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 돼야 청원
일제는 조선을 점령한 뒤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숭례문을 부수려고 한 적이 있다. 가토 기요마사 부대가 처음 통과한 문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헐지 않았다. 대신 상징성을 입혔다. 조선고적 1호로 지정했다. 일본군 앞에 활짝 열린 문이었으니 1호가 됐다. 또다른 일본군이 통과한 동대문은 조선고적 2호가 됐다.
한용걸 논설위원 |
역사바로잡기가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뒷순위로 보내려는 시도를 했다. 당시 감사원은 대한민국 상징성이 부족하다며 국보 1호 교체를 권고했다. 그런데 문화재위원회가 반발했다. “해방 이후 우리가 정한 것이지 일제의 잔재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이던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반대에 앞장섰다.
숭례문의 위치가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됐다. 일부 석축만 남았다. 러시아산 소나무 사용을 둘러싸고 분석작업하던 충북대 교수가 목숨을 끊는 등 잡음이 일었다. 온갖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복원됐다. 그러나 준공 후 수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지고 기둥이 갈라졌다. 일본산 화학안료를 사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숭례문 부실 복구를 두고 원전급 비리라고 통탄할 정도였다.
최근 국어문화실천협의회 문화재 제자리찾기 등 시민단체가 20대 국회 1호 청원을 냈다.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빼자는 주장을 담았다. 12만명이 서명했다. 숭례문이 차지했던 1호 자리에는 뭐가 들어가야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우면 된다고 한다. 한글을 만든 원리와 철학이 담겨 있다. 언어를 만든 이론을 담아낸 세계 유일의 문서이다. 영어도, 중국어도 말이 만들어진 원리를 담은 문서는 없다. 사용하다 보니 오늘날까지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은 출발점이 다르다. 특정한 원리에 입각해 고심을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언어이다. 그러한 철학적 배경이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서열에서 저만치 뒤인 70호이다. 70쪽에 달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숭례문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위치를 바꾸면 비용면에서, 위상면에서,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문제될 게 거의 없다. 문화재 번호는 서열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단지 관리번호라는 것이다. 하지만 1호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조선총독부의 음흉한 의도 때문에, 불타버린 국보의 가치 때문에 재고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번호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한다. 문화재에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는 곳은 한국과 북한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장 번호제를 없애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78, 83호) 등 동일명칭 문화재 때문에 혼란이 야기된다. 동일명칭 국보는 5종류가 더 있다.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도 번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수백억원의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기에 부담이 작지 않다.
8·15 광복절을 앞두고 20대 국회가 어린이들의 청원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이들은 여론화를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 필사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월 9일 한글날에는 광화문광장에서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다고 한다. 의원들은 한국의 미래가 이들 것이라는 점을 새겼으면 한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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