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보면 지금처럼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마을을 서촌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요즘 서촌은 사람과 역사 이야기가 가득한 명소로 사랑 받고 있다. 서촌 중에서도 남쪽 구역에 금천교 시장이 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월남한 김정연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떡볶이를 팔던 그 시장이다. 인근 통인시장이 시장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이미 음식점 골목으로 바뀌었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까지 붙어 있다. 순댓국과 소머리국밥을 파는 가게는 시장 중간 쯤에 있었다.
▦ 요즘처럼 비 오는 날 돼지머리 고기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면 얼굴은 발개져도 분위기는 한껏 낼 수 있던 집이었다. 7년 전 데려갔던 중학생 조카는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술집이 이런 곳이지요?”라고 묻기도 했다. 인력거꾼이 손님을 태워 번 돈으로 술 한 잔 마신 다음 설렁탕 국물을 사 집에 가져갔더니 아내가 죽어 있었다는 현진건의 소설이다. 순댓국을 먹던 사복 차림 고교생들이 “막걸리 값이 얼마냐”고 했다가 주인으로부터 “공부나 할 것이지 막걸리는 왜 찾아?”라는 핀잔을 듣는 장면도 보았다.
▦ 시장을 오랜 만에 들렀더니 그 자리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 집뿐 아니라 추억 깃든 음식점은 대부분 사라졌다. 문득 지난해 말 그곳에서 시위하던 한 상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 건물 가치를 높여놨더니 건물주가 나가달라고 한다던 하소연이 귓가에 맴돌았다.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가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그곳이라고 피할 수는 없을 터이다. 새로 문을 연 음식점도 모두 잘돼야 하지만, 추억이 사라지고 정든 사람이 떠나간 그곳을 한동안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광희 논설위원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북을 열며] 가장을 위하여 (0) | 2016.07.21 |
---|---|
[지평선] 여성혐오 (0) | 2016.07.20 |
[정성희의 사회탐구]外助 정치의 시대 (0) | 2016.07.18 |
[마음산책] 우리에겐 ‘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0) | 2016.07.16 |
[일사일언] 어느 '무조건' 후원자 (0) | 2016.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