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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가장을 위하여

바람아님 2016. 7. 21. 23:42
중앙일보 2016.07.21. 00:14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한때 회자됐던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집 안에서 아내는 안에 자리, 가장은 가장자리, 결혼하지 않은 자녀는 잔여 자리라고. 밖에선 한껏 떵떵거리는 남편도 집에만 들어오면 가족들 사이에서 겉돌기 일쑤고, 아내는 아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다 풀고, 나이가 꽉 차서도 독립하지 못한 아들딸은 부모의 눈치만 봐야 하는 게 오늘날 우리네 가족의 자화상이다.

가장이 가장다운 역할을 해야 가정이 조화롭게 굴러갈 텐데, 언제 어디서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일 텐데, 집에만 있으면 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할 텐데, 집 안에서 가장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어느새 ‘home, home, sweet home’은 노랫말에서나 들을 법한 먼 나라 얘기가 돼버렸다.


박신홍 EYE24 차장
박신홍 EYE24 차장

조선시대에도 안방은 안주인이 거주하는 방이었다. 남편이 머무르는 곳은 사랑방이라 했다. 하지만 이때는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내의 공간을 보장해 준다는 취지였으니 지금과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SNS에선 이 같은 모계사회로의 급속한 변화에 대해 “이러다 우리 자녀들 세대가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엄마 성을 따르게 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전망마저 나온다.


가장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지는 오래됐다.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아빠 셋 중 두 명은 자녀들과 일주일에 한 시간도 대화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들에게만 외면당하는 게 아니다. 아내로부터는 아예 퇴짜를 맞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총 이혼건수 10만9000여 건 중 20년 이상 함께한 부부의 황혼이혼 비중이 29.9%로 가장 높았다. 4년 이하가 22.6%로 그 다음이었다. 줄곧 1위를 고수하던 4년 이하를 2012년부터 제쳤다. 반퇴 시대를 맞아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기도 벅찬데 집 안에서는 위로와 격려는커녕 푸대접만 받고 있으니 복장이 터질 만도 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얼음을 걷는 듯한 가정의 위기를 외면만 할 수는 없다. 가정이 탄탄하지 않은 남편이 밖에 나가서 성공하긴 이젠 힘든 세상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거나 마찬가지다.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 하건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아내·자녀와 어렵사리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도 10분을 넘기기 전에 핏대 섞인 짜증이나 무시로 끝나기 십상”이란 주변 가장들의 자조는 남의 얘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사실적이다.


마침 휴가철이다. 아무리 여유가 없더라도, 1박2일이라도, 도떼기시장 같은 해수욕장에라도 일단 떠나 보자. “그래 봤자 소용없다”며 지레 단정짓지 말고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시도라도 해 보자. 집을 떠나 좋든 싫든 하루 이틀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다 보면 뭔가 돌파구가 열릴 수 있지 않겠나. 불가능할 것만 같던 ‘10분 대화’의 깔딱고개를 훌쩍 넘어서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가장이 가장자리에서 가장 대접받는 자리로 한 발 더 나아갈 때 가정도 바로 서고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다.


박신홍 EYE24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