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지평선] 서촌이여 안녕

바람아님 2016. 7. 19. 00:02
한국일보 2016.07.17. 20:10

독립신문 1899년 11월27일자에는 “서촌에는 영(英ㆍ영국) 미(美ㆍ미국) 덕(德ㆍ독일) 법(法ㆍ프랑스) 아(俄ㆍ러시아) 다섯 나라 공사관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다섯 나라 공사관이 있던 곳은 딱 한 군데, 바로 정동이다. 월간 개벽 1924년 6월호는 “북산 밑은 북촌, 남산 밑을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내외를 서촌…”이라고 했다. 국어학자 이중화의 ‘조선의 궁술’이나 월간 별건곤 등에서도 서소문 일대를 서촌이라 일컬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서촌은 서소문과 이웃 정동이었다.

▦ 이렇게 보면 지금처럼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마을을 서촌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요즘 서촌은 사람과 역사 이야기가 가득한 명소로 사랑 받고 있다. 서촌 중에서도 남쪽 구역에 금천교 시장이 있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월남한 김정연 할머니가 수십 년 동안 떡볶이를 팔던 그 시장이다. 인근 통인시장이 시장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이곳은 이미 음식점 골목으로 바뀌었고,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까지 붙어 있다. 순댓국과 소머리국밥을 파는 가게는 시장 중간 쯤에 있었다.


▦ 요즘처럼 비 오는 날 돼지머리 고기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면 얼굴은 발개져도 분위기는 한껏 낼 수 있던 집이었다. 7년 전 데려갔던 중학생 조카는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술집이 이런 곳이지요?”라고 묻기도 했다. 인력거꾼이 손님을 태워 번 돈으로 술 한 잔 마신 다음 설렁탕 국물을 사 집에 가져갔더니 아내가 죽어 있었다는 현진건의 소설이다. 순댓국을 먹던 사복 차림 고교생들이 “막걸리 값이 얼마냐”고 했다가 주인으로부터 “공부나 할 것이지 막걸리는 왜 찾아?”라는 핀잔을 듣는 장면도 보았다.


▦ 시장을 오랜 만에 들렀더니 그 자리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 집뿐 아니라 추억 깃든 음식점은 대부분 사라졌다. 문득 지난해 말 그곳에서 시위하던 한 상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몇 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 건물 가치를 높여놨더니 건물주가 나가달라고 한다던 하소연이 귓가에 맴돌았다.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가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그곳이라고 피할 수는 없을 터이다. 새로 문을 연 음식점도 모두 잘돼야 하지만, 추억이 사라지고 정든 사람이 떠나간 그곳을 한동안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광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