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25일 소련이 해체되자 서구의 시선이 중국으로 쏠렸다. 마지막 남은 동방의 공산주의 대국 중국의 운명은 과연 어찌 될까? 그런 눈길에는 중국 또한 붕괴하지 않을까, 붕괴하면서 몇 개의 나라로 나뉘지 않을까, 그것도 한 자릿수가 아닌 두 자릿수가 되지 않을까 등 갖가지 억측이 깔려 있었다. 이 같은 중국 분열의 시나리오는 천하대란에서 민족별 분열, 지역별 연방화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후 덩샤오핑 사망 등 중국에 불길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서구에선 중국 붕괴론이 고개를 들었다.
중국 분열은 픽션, 유럽 분열은 다큐
그러나 웬걸, 91년부터 쪼개지기 시작한 건 중국이 아니라 유럽 남동부에 자리한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이었다. 그해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후 마케도니아도 독립의 길을 걸었다. 93년엔 유럽 중부의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었다. 지난 6월 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은 또 다른 유럽 분열의 신호탄이 될 공산이 크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스페인의 카탈루냐 등이 분리 독립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유럽연합의 붕괴 정도가 아니라 유럽 각국의 분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렇다면 유럽 분열은 현실인 다큐에 해당하고, 중국 분열은 허구인 픽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천하통일은 진시황이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일궈낸 핵심어이자 중국의 시공을 통째로 꿰뚫는 모노레일이다. 진시황 이후 2016년 오늘날까지의 중국 역사 2237년을 계량화하면 통일 기간은 1633년으로 약 73%를 차지하고 분열기는 604년으로 약 27%가 된다. 통일 시기가 압도적으로 길었다. 진(秦)에서 한(漢)과 수(隋),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그리고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을 관통하는 제1의 국시(國是)는 천하통일의 유지와 발전이었다.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5대10국의 분열기는 물론 20세기 군벌 할거 시기에도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외쳤지 분리 독립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천하통일은 중국의 시공을 일관하는 가장 뚜렷한 흐름이다.
서양에서 동양의 『삼국지』에 맞먹을 만큼 환영받는 고전은 실러의 『윌리엄 텔』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여러 나라 학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윌리엄 텔은 자기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화살로 쏘아 맞힌다. 명사수였던 그가 아들의 생명을 담보 삼아 쟁취하고자 했던 건 다름 아닌 스위스의 ‘분리 독립’이었다. 어찌 보면 분리 독립은 서기 286년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를 동서로 분할한 이래 최근의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하나로 꿰뚫고 있는 키워드다. 유럽에서의 통합과 분리시대 비율은 중국과 정반대다.
로마의 기독교와 진시황의 법가사상
원래 하나가 아니었던 여러 개를 하나로 합치는 것은 통합이다. 로마의 통합이 한 예다. 반면에 원래 하나였던 게 여러 개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을 통일이라고 한다. 진시황의 통일이 그렇다. 통합은 동화시키는 것이고, 통일은 일치시키는 것이다. 로마는 세계를 세 번 통합했다. 첫 번째는 군사력, 두 번째는 법률 특히 사법(私法)으로, 세 번째는 종교(기독교)로 지중해 연안 각지를 통합했다. 진시황은 천하를 세 번 통일했다. 첫 번째는 역시 군사력으로, 두 번째는 법률 특히 공법(公法)으로, 세 번째는 사상(법가)으로 7국을 통일한 것이다. 군사력이 하드파워라면 법률과 종교, 사상은 소프트파워다. 이 소프트파워의 차이가 바로 유럽과 중국의 현재 차이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