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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대국의 복수

바람아님 2016. 8. 14. 00:54
[중앙일보] 입력 2016.08.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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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베이징 총국장


#1. 2012년 9월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국유화를 단행했다. 중·일 관계는 얼어붙었고 일본을 찾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기 시작했다. 애국심에 불타는 중국인들이 스스로 일본 여행을 자제했던 걸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어느 날 고위 당국자가 여행사 사장들을 조용히 불러모았다. 참석자들은 휴대전화는 물론 일체의 필기도구를 꺼내 놓고서야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회의에선 일본 단체 여행을 중단하라는 구두 지침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에 관한 중국 정부의 발표나 보도는 전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중국 스타일’이다.

#2. 2016년 1월 대만 독립 노선의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蔡英文)이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 뒤 중국은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하나의 중국’ 원칙, 즉 ‘92공식’을 인정하라고 차이를 압박했다. 차이의 총통 취임식이 열린 5월 20일 대만TV에서 이런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중국 대륙으로 수출하는 자라알, 석반어(쥐노래미) 등 수산물의 위생검역이 강화돼 반품이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주문량까지 급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파인애플 등 농산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92공식과 하등 관계 없어 보이는 석반어까지 대만 압박의 도구로 삼은 게 ‘중국 스타일’이다.

두 사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의 내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표까지 다 팔린 한류 스타의 대규모 팬미팅이 행사 사흘 전 갑자기 취소되는 등 한국 연예인의 공연 취소, 출연 중단이 잇따랐다. 중국 대사관은 여태까지 잘 내주던 상용 복수 비자의 심사를 강화해 사실상 발급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없어서 못 팔던 한국 화장품에 규정량을 넘는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실제로 통관검사가 강화됐다는 뉴스로 이어졌다. 공통점이 있다. 중국 측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가 시작됐구나”라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중 대사관도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황 파악에 나섰지만 알아낸 건 “공식 지침이 내려간 건 없다. 경제보복 조치가 내려진 것도 없고 한류 행사도 대부분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다. 현장에서 겪는 위기감이나 혼란과는 동떨어진 실태 파악이다.

‘10년이 걸려도 반드시 보복을 해야 군자(君子報讐十年不晩)’로 보는 게 중국인의 사고방식이다. ‘복수를 위해선 천리도 지척(報讐千里如咫尺)’이란 말도 이백(李白)의 시구에 등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 시작의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사드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주도면밀하게 닥칠 수 있는 일들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주중 대사관 간부의 말처럼 “설마 대국이 치졸한 방법으로 복수하겠어요?”라며 낙관에 빠져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뭇매를 맞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