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16 길해연·배우)
"어디서 만날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갑자기 난감해진다.
한 1년 사이 공연을 하지 않다 보니 대학로에 나올 일이 줄었고
어쩌다 나오게 돼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결국 대학로의 '어디'를 정하지 못하고 3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어디를 가야 하나…."
3번 출구 앞에서도 계속 그 '어디'를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다니다가 재즈 라이브 카페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최근 자주 가던 카페 두 곳이 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터인지라 그 카페로 가면서도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예전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백발의 미녀 사장님이 오랜만이라며 얼싸안아 줬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백발의 미녀 사장님이 오랜만이라며 얼싸안아 줬다.
아, 예전 그대로구나. 마음이 턱 놓였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던 분과 눈이 마주치자 그분 또한 예전 그대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눈인사를 건넸다.
페르시안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예전 그대로다.
연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나른하게 앉아 있는 사람,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다
중간 중간 아는 대목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근엄한 얼굴로 무대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 음악이 고조되고 흥이 오르자 좁은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춤을 추는 사람.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영화 속 같은 장면을 등장인물만 바꿔 찍어보는 것처럼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너무도 쉽게 사라져버리고 너무나 빠르게 변해 가는데 그 와중에도 원래 있던 자리에 예전 모습 그대로 있어
준다는 거. 그게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익숙하고 여전한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비단 장소뿐이겠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여전히, 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겠는가. 연주가 다시 시작되고 나는 아까보다 좀 더 깊숙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고마워,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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