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중국 전문가
춘추시대 남방의 강대국 초나라 장왕(莊王) 때 손숙오(孫叔敖·기원전 약 630∼593년)라는 재상이 있었다. 손숙오가 재상이 되자 호구장인(狐丘丈人)이라는 정체 모를 사람이 손숙오를 찾아와서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고, 녹봉이 많은 사람에게 보통 사람들은 원한을 가지는데, 시기·혐오·원망입니다. 들어보셨소?”
손숙오는 “저는 적어도 그 세 가지는 피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하면 내 몸을 낮추고 사람들에게 겸손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시기와 혐오를 피하고 있고, 녹봉은 많은 사람에게 나눠 줌으로써 혐오감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높은 자리에서 권력을 가지고 백성들을 위해 바르게 행사하기는커녕 무조건 휘두르려고 하면 백성들은 당연히 혐오하게 된다. 여기에 많은 녹봉까지 받게 되면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흐르기 쉽다. 비리와 부정이 뒤따르는 것은 필연이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원망을 받는다. 요즘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세태와 영락없이 똑같다. 땅 투기, 부동산 투기는 물론, 돈이 된다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일부 지도층과 관료들의 모습을 보라! 이 파렴치한 공직자들과 사회 지도층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혐오와 원망은 저리 가란다. 그들 중 증오와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는 국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이, 몇이나 될까?
손숙오는 세 번 재상에 임명됐다가 세 번 파면당했다. 하지만 손숙오는 세 번 임명될 때나 세 번 파면당할 때나 한결같이 누구를 원망하거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담담했다. 세 차례나 재상에 오른 것을 기뻐하지 않은 까닭은 자기 재능으로 얻었기 때문이요, 세 차례 재상에서 파면당한 것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자기 과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장자(莊子)’에 보면 손숙오가 재상 자리에서 쫓겨났을 당시 이런 일화가 전한다. 견오(肩吾)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께서는 세 번이나 재상에 임명됐지만 한 번도 영광스러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세 번이나 해직되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한 번도 괴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 저는 당신의 이런 심리 상태를 의심했지만 지금 보니 당신의 마음은 정말 태연자약합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에 손숙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게 무슨 초인적인 힘이 있겠는가? 나는 그저 재상에 임명된 일을 피할 수 없는 책임으로 생각했고,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막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그 일이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이 풀리는 대로 내버려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다. 내게 무슨 초인적인 능력이 있을까? 그냥 나는 이른바 영광이나 괴로움이 대체 누구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인가, 아니면 재상 것인가? 만약 재상 것이라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내가 영광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내 것이라면 재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 않은가? 재상과 관련이 없는 이상 내가 그 자리를 맡느냐 맡지 않느냐를 가지고 영광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바람을 쐬면서 유람할 시간도 부족한데 무엇 때문에 귀천을 생각하고, 또 그것 때문에 슬프고 기뻐해야 한단 말인가?”
손숙오는 평생 개인적으로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으며, 자식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받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손숙오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들은 나무를 베어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곤궁하게 살았다. 손숙오 생전에 그로부터 존중을 받으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던 악사(樂士) 우맹(優孟)이 저잣거리에서 나무를 지고 팔러 나온 손숙오의 아들을 보았다. 궁궐로 돌아온 우맹은 손숙오 분장을 하고 손숙오의 언행을 흉내 내며 1년 가까이 지냈다.(여기서 ‘우맹이 손숙오의 복장을 했다’는 ‘우맹의관·優孟衣冠’이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손숙오가 새삼 그리워진 장왕은 우맹에게 재상 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우맹은 며칠 말미를 달라고 했다. 사흘 뒤 우맹은 장왕에게 마누라가 초나라 재상은 할 자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면서 자리를 사양하고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탐관오리는 해서는 안 되는 데도 하고, 청백리는 할 만한 데도 안 하는구나.
탐관오리가 되면 안 되는 것은 추하고 비천해서인데
그래도 하려는 까닭은 자손의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지.
청백리가 되려는 것은 고상하고 깨끗해서인데
그래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자손이 배를 곯기 때문이라네.
그대여,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보지 못했는가?’
자초지종을 들은 장왕은 손숙오의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배려했다. 청나라 말기의 이름난 청백리 임칙서(林則徐)는 “자손이 나와 같다면 재물을 남겨주어 무엇 하겠는가? 유능한데 재물이 많으면 의지가 손상되기 쉽다. 자손이 나만 못하다면 재물을 남겨주어 무엇 하겠는가? 어리석은 데다 재물까지 많으면 잘못만 늘어날 뿐이다”고 했다. 온 가족이 나서 온갖 불법적 방법으로 축재에만 몰두하고 있는 저열한 인격에 비상하게 돈만 많은 우리 공직자가 정말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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